금융부실의 ‘시한폭탄’ CDS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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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30면

요즘 세계 금융 상황은 새로 시작되는 한 주가 무서울 지경이다. 거의 매주 메가톤급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집값 하락에 따른 주택 모기지 부실이 문제의 진원이라지만 잘나가던 금융 거인들의 갑작스러운 돌연사(死)가 꼬리를 무는 사태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신용시장에서 어느 한 회사가 위태하다는 풍문이 나돌면 이 회사의 채무를 보증하는 보증 코스트(신용 스프레드)는 갑자기 치솟는다. 주식 값과 회사채가 폭락하고 대차대조표상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져 자본금의 긴급 수혈이 없으면 회사는 무너진다. 베어스턴스·리먼브러더스·AIG·메릴린치 등 금융 거인들이 똑같은 패턴으로 무너졌다. 장치해 놓은 폭탄의 단추를 누르듯 신용시장의 경고음 하나로 잠재적 부실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배후에는 CDS(Credit Default Swap)라는 ‘괴물’이 있다. 신용파생상품의 하나인 CDS는 신용불이행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신용파산보험이다.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정기적으로 보험료를 내고 대출 부실이 발생하면 보험금으로 메우는 손실방지 장치다. 1994년 JP모건의 수학·과학 두뇌들이 대출금 상환불이행에 대한 보호장치로 개발해 상품화했다. 중남미와 러시아 등에서 채무불이행 사태가 속출하고 엔론과 월드콤 등 거대 기업의 갑작스러운 도산으로 위험 회피의 필요성이 맞물리면서 CDS 시장 규모는 2000년 1000억 달러에서 2004년 6조4000억 달러로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왔다. 여기에 미국 주택 붐이 불을 붙였다.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모기지 증권의 채무불이행 위험에 대한 회피 수단으로 CDS 시장은 2007년 62조 달러 규모의 거대 공룡으로 변했고 위험을 얼굴 없는 다수에게 이전하는 블랙박스의 복마전으로 바뀌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5년 전 이 CDS를 가리켜 ‘시한폭탄’이자 ‘금융 대량살상무기’라며 이 업무에 손대지 말라고 자기 회사 보험 부서에 지시까지 내렸다. CDS 시장의 채무보증 약정액은 세계 전체 실제 채무의 세 배가 넘는다. 각 회사가 상호 채무보증해 한 회사가 채무를 불이행하면 연쇄 파급되어 그 손실액은 특정 기관이나 개별 국가 정부, 또는 기업 힘으로 구제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리스크의 내부 연결고리’라고 최근 혀를 찼다. 미 정부가 리먼브러더스를 망하게 내버려두고 AIG를 구제한 이유도 바로 이 CDS 공포 때문이었다. AIG의 CDS 약정액은 4410억 달러였다. JP모건의 권유로 런던 독립사업부가 적극 투자해 연 2억5000만 달러의 프리미엄 수입으로 재미를 보다 지난해 10월 이후 신용경색으로 250억 달러의 손실을 입으면서 모회사가 물린 것이다. 세계 130개국에 7400만 건의 보험 약정을 가진 AIG가 파산한다면 그 파장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베어스턴스 구제도 CDS를 많이 보유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CDS를 많이 보유하는 것이 최고”라는 도덕적 해이도 낳고 있다.

CDS는 규제받지 않는 신용보험 시장이다. 등록된 계약서도 없고 사사로이 장외에서 거래되며 당국에 보고할 의무도 없다. 정기적 프리미엄(보험료)은 JP모건 모델에 따라 금융공학적 기법으로 계산되고 있지만 헤지펀드를 비롯한 자산관리자들이 시장에 대거 뛰어들면서 리스크에 무리하게 베팅하고,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대책의 일환으로 이를 이용해 약정액을 불려 왔다. 최근 당국의 규제가 시작되면서 55조 달러로 고개를 숙였다.

원래 가입자를 예상치 못한 재앙에서 보호해 주는 것이 보험이다. 그러나 이 특화된 보험인 CDS는 거꾸로 가입자의 악재를 대재앙으로 만들어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어떤 회사에 신용 위험 조짐이 있으면 상대방은 그 회사의 채무를 보증하는 CDS를 다투어 구입한다. 보증 코스트가 오르면 주가가 하락하고, 공매도로 패닉까지 가세하면 주가 폭락-자본금 부족-구제금융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CDS 시장의 위험신호는 과장되기 일쑤고 CDS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구입했는지도 전혀 알 수 없다. 본시 CDS는 유용하고 효율적인 금융상품이지만 총기처럼 이용자가 잘못 쓰면 해악 또한 크다. 그렇다고 총기 자체를 없애면 금융공학 두뇌들은 당국의 규제를 우회하는 또 다른 파생상품을 내놓기 마련이다. 주체할 수 없는 괴물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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