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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즐거워라 ~중고 인생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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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15면

나는 중고 인생이다. 내가 쓰는 오디오, 자동차, 노트북, 기타, 카메라와 렌즈, 일부 옷과 가방 모두 중고 제품이다. 황학동에서 먼지 쌓인 1970년대 일제 앰프를 사온 날, 어머니는 고물을 왜 자꾸 집에 들여놓느냐고 잔소리하셨지만 나는 뿌듯하기만 했다. 중고 인생은 합리적이어서 즐겁고, 몰랐던 것도 배울 수 있어 흐뭇하다.

PERFECT MAN

우리가 타는 택시 중에는 40만㎞도 넘게 뛴 것들이 있다. 자동차란 소모품만 교체하면 그렇게 오래 탈 수 있는 기계다. 10만㎞만 넘겨도 폐차 취급하는 우리는 청년과 중년을 노인으로 여기는 셈이다. 뭐, 나야 이런 비합리적인 풍조가 고맙다. 덕분에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서 아직 쌩쌩한 차들이 헐값에 거래되고 있으니까. 10만㎞를 넘긴 자동차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소모품을 교체하게 된다. 하지만 초기 구입비가 적게 들었으니 부품 값쯤이야 얼굴 많이 안 구기고 지불할 수 있다.

중고의 아쉬움은 성능보다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내겐 문제가 안 된다. 모든 최신이 최고는 아니다. 디자인도 그렇다. 되레 눈 밝은 사람들은 지금처럼 세상이 복잡하지 않고 장인, 디자이너, 엔지니어의 의지대로 제품을 만들던 때를 그리워한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영범씨가 60년대 브라운사의 오디오를 만든 디자이너 디터 람스를 추종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70년대 디자인은 30년이나 뒤처진 디자인이 아니라 당시 기술과 생활에 가장 부합하는 디자인일 뿐이다. 요즘 많이 따지는 ‘감성’으로 치면 그때의 아날로그 디자인이 지금의 최신 디지털 디자인보다 백배는 뛰어나다.

중고를 쓰면 몸이 수고로워지는 건 사실이다. 중고차는 사고를 부를 수도 있다. 반 년 전, 도로에서 유턴하다 ‘뚝’ 소리와 함께 핸들이 꿈쩍하지 않는 사고를 당했다. 핸들과 바퀴를 연결하는 벨트가 끊어진 것이다. 나의 미련함은 여기에 있다. 그래도 중고가 주는 수고로움이 싫지 않다. 그 수고 덕분에 몰랐던 걸 알게 됐으니까. 등속 조인트나 타이밍 벨트 같은 부품을 교체하다 보면 자동차의 구조나 동력 원리도 알게 되고 카센터에서 적당히 눙치면서 수리비를 깎는 요령도 터득한다.

제품 수명을 다 채움으로써 자본주의 소비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는 나, ‘오버’라는 거 인정한다. 하지만 오늘도 강남 거리를 빛내는 아름다운 수입차 행렬을 보며 난 득의의 미소를 짓는다. ‘새것만 찾는 저 친구들, 곧 쌩쌩한 차들을 내놓겠지? 몇 년만 기다리자. 저거 다 내 거 된다. 흐흐’.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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