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지는 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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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본선 32강전>
○·구 리 9단(중국) ●·진시영 3단(한국)

 ◆제15보(213∼229)=무서운 기세로 승부를 걸어갔으나 배후에 치명적인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걸 뒤늦게 알아챈 진시영 3단은 눈물을 머금고 흑▲로 후퇴해야 했고 구리 9단은 여유 있게 백△로 불을 껐다.

애당초 진시영의 목표는 흑▲가 아니라 ‘참고도’ 흑1로 뻗는 수였다. 이 수가 성립된다면 바둑도 여기서 끝이었다. 그러나 백2의 반격이 숨어있었다. 이후 12까지 수상전인데 흑이 도저히 안 되는 그림이었다. 결국 흑의 패기 넘친 강수들은 승리를 날려버린 무리수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백△가 온 다음에도 수는 있었다. 하나 217까지 토막을 살려낸 것은 흑의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역전을 직감한 진시영은 총력을 기울여 중앙을 파고 들었지만 철벽으로 변한 방어선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228에 이르러 중앙 백 집이 완성됐다. 줄잡아 58집. 하변 26집까지 보태면 84집.

흑은 우하 쪽이 약간 커져 세어보니 90집 언저리다. 덤을 제하면 반 집 승부. 그러나 흑은 229로 한 수 따내야 하는 부담이 있어(여기까지 계산해서 90집이다) 천금 같은 선수가 백에게 돌아갔다. 검토실에 모인 프로들은 침묵 속에서 아쉬운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진시영은 참 잘 싸웠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다. 지금 선수를 잡은 쪽이 바둑도 이긴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dar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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