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中年>17.웨딩드레스 학원 강경자 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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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여자들은 결혼하면 살림하며 집에 있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뒤늦게라도 일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그들에게 일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성취감 때문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갖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일한다는 것 자체를 자기삶의 방식으로 여기는 여성들에게는 그런 물음이 의미없다.
그들에게 일이란 본분에서의 「외도」도 아니고 다만 자기 삶 그 자체인 때문이다.
웨딩드레스전문학원 「보누르 웨딩연구원」 원장 강경자(41)씨는 『일과 생을 나눠 생각할수 없다』며 억척스레 자기사업을 일궈온 지칠줄 모르는 신세대 중년이다.
1년과정을 마친 학생이면 자기 웨딩드레스는 물론 다른 드레스도 만들 만큼 배우게 된다는 「보누르」는 개원 4년만에 웬만한패션학원도 부럽잖은 규모로 성장했다.
『인물도 없고 뭐하나 뾰족하게 내세울게 없어 그저 일이 팔자려니 하고 일만 해왔지요.』 공무원인 남편과의 사이에 10세된아들을 두고있는 그녀가 우스개로 말하는 자신의 「일」인생에 대한 변명(?).
덕성여대 의상학과 졸업후 한동안 하던 여고 가정교사를 그만두고 패션디자인 쪽으로 파고들기 위해 시대복장학원(현 시대패션아카데미)강사로 나선 것은 지난 86년.그해 결혼했지만 『평생 일하겠다고 마음을 먹어 맏며느리가 되는 것은 아예 생각도 안했다』는 그녀에게 그게 새삼 문제일 수는 없었다.
일에 대한 왕성한 의욕과 자신감으로 무장된 그녀에게 학원장을도와 학원운영을 담당하는 중요 역할이 부여됐고,강씨는 그런 중에 자기사업을 결심하는 계기를 얻었다.89년 학원에서 가르치는학생들을 인솔하고 파리연수를 떠났던 것이 그 계기였다.
『세상에 참 볼게 많구나 싶더군요.이렇게 좋은 세상구경을 내맘대로 하려면 남의 밑에서 일해서는 안되지 하는 생각이 들어 여행에서 돌아오자 바로 사업계획을 구체화했지요.』 강씨가 애써웨딩드레스 만들기를 배운 것은 그 무렵부터다.
우리나라 웨딩드레스들이 체계화된 제작법 없이 현장작업자들의 대충의 「감」에 의존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있던 터라 강씨는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달려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업소간에 경쟁이 심해 누구도 그 기술을 가르쳐 주려들지 않았다.
주부에 패션학원강사,학원경영일까지 1인 다역을 하면서 35세의 나이에 이화여대산업대학원에서 의상학 석사를 따기도 했던 억척스런 그녀였지만 업계의 그 높은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다하다 안돼 나중에는 미국에 이민가려고 배우려는 거니까 좀 가르쳐달라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사정했지요.』 강씨는 주먹구구식 「감」으로 돼온 웨딩드레스 제작법을 『여기는 몇인치…』하는 식으로 수치화한 것은 자신이 처음이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웨딩드레스는 사실 부르는게 값이지요.똑같은 드레스도 강남값이 다르고 강북값이 다르고 대여업소마다 다르니 뭔가 잘못돼 있어요.』 요즘 한번 빌려 입는데 40만원에서 3백만원을 호가하는 웨딩드레스값은 삐뚤어진 우리의 소비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것이라고 그녀는 일침을 놓는다.
어머니.할머니가 입던 것을 대물림해 입기도 하는 서양사람들의검소함을 배워야 한다며 강씨는 웨딩드레스의 옷본을 무료로 대여해 신부나 주변에서 직접 드레스를 만들어 입는 문화를 일으켜 볼 참이라고 했다.
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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