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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가 빨리 결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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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농림부는 4일 양곡유통위원회가 건의한 대로 올해 추곡 수매가를 지난해보다 4% 인하하는 내용의 정부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수매가를 낮추기로 한 것이다. 기획예산처 등 정부 내의 다른 부처와도 이미 실무적으로 협의를 마치고 내린 결론이다.

그러나 이날 국무회의에서 수매가는 의결되지 않았다.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수매가 인하에 따른 농민 소득 보상 대책을 더 검토해 보라"며 의결을 보류했다.

정부가 사전 조율을 거쳐 마련한 추곡 수매 계획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의결을 보류한다고 해서 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정을 미루면 미룰수록 농민들에게 오히려 부담이 커진다.

농림부가 5월 초에 맞춰 수매가안을 상정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모내기 시기인 5~6월은 농민들에게 돈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정부의 추곡 수매가를 빨리 확정하면 선금으로 수매가의 60%를 농민들에게 지급할 수 있다. 수매가는 국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되지만 그 전에 선금을 주고 나중에 정산하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매가 결정을 미적거리는 동안 농민들은 어디선가 돈을 마련해야 한다.

국무회의에서 수매가 인하 문제를 농민 소득 지원 대책과 연계시킨 것도 문제다. 농림부는 올해부터 임기응변식 대책을 없애고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 농민들을 지원키로 했다. 쌀 농가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소득 보전책인 직불제를 전반적으로 개편하는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을 다른 사안과 연계해 또 검토하라는 것은 스스로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추곡 수매 제도는 세계무역기구(WTO)가 폐지하도록 권고하는 제도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정부는 2% 인하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동결하는 선으로 후퇴했다. 결국 올해 인하 폭은 지난해 내리지 못한 것까지 합쳐 4%로 늘어났다. 농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 추곡 수매가 인하를 또 미루면 그 부담은 더 커진다.

김영훈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