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갈망 클린턴에 후세인은 희생양-이라크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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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미국을 오판(誤判)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같다.5년전에는 부시대통령의 미국이 결코 무력응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으로 쿠웨이트를 점령했다가 파국직전의 벼랑으로 몰린바 있다.이번에는 선거에 바쁜 클린턴이무력제재로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한가한 생각으로 쿠르드족이 사는 이라크북부를 침공해 이라크남부 지역이 미국의 막강한 미사일세례를 받았다.
후세인은 클린턴이 바로 11월로 임박한 대통령선거 때문에 적당한 상대라면 미국의 괴력(怪力)을 발휘하는 기회를 놓칠수가 없다는 선거철 정치의 논리를 알지 못해 또 한번 이라크의 주권을 유린당하고 있다.대통령후보 봅 도울을 포함한 공화당사람들은클린턴의 이라크정책을 비판하면서 그라나다 침공과 걸프전쟁을 통해 미국의 리더십을 과시한 레이건과 부시를 영웅으로 찬양해 클린턴을 자극해 왔다.람보가 되기를 갈망하는 클린턴에게 후세인은스스로 희생양이 돼준 꼴이다.
미국의 이라크 미사일공격이 클린턴의 선거전략과 관계가 있다는것은 공격이 시작된 시점과 후세인의 군대가 쿠르드지역에 침공한배경을 보아도 알수 있다.
배경부터 보자.이라크북부의 쿠르드족은 두개의 세력으로 분열돼동족상잔(同族相殘)을 벌이고 있다.쿠르드민주당(KDP)은 친이라크집단으로 후세인과의 협상을 통해 쿠르드족의 자치를 획득하는것이 목표다.반면 이란의 지지를 업고 있는 쿠 르드애국동맹(PUK)은 후세인 타도가 목표다.
1970년대 중반부터 무력충돌과 휴전을 되풀이해온 두 세력은92년에는 쿠르드족의회 선거를 치러 각각 50석씩을 차지해 적어도 쿠르드족의 내분은 종지부를 찍는가 싶었다.
그러나 94년 전투가 재개돼 4천명의 희생자를 내고 미국의 주선으로 휴전이 성립됐다.지난 8월 휴전은 또 깨졌다.친이라크의 쿠르드민주당 지원요청을 받고 쿠르드 지역을 침공한 이라크군2개 기계화사단은 쿠르드애국동맹의 장악하에 있던 쿠르드지역 수도인 아르빌을 점령했다.
유엔안보리는 1991년 쿠르드족의 보호를 위해 이라크영토의 북위36도선 이북에서는 이라크가 군사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한바 있는데 이라크군의 출동은 이 결의안을 위반한 것이다.이 결의안 위반이 미국의 미사일공격에 유일한 「법적」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다.그러나 내용상으로는 미국이 이라크와 함께쿠르드족의 내분에 휘말려 든것이고 아이로니컬하게도 결과적으로 이란이 비호하는 세력의 편에 서게 됐다.
공격시점은 어떤가.아르빌현지의 유엔감시단원들과 터키외무장관,이라크정부의 발표를 보면 후세인은 2일까지는 철수를 끝냈다.그러나 미국은 군사제재를 정당화하는 원인의 소멸에 개의치 않은것이다.정치와 선거냄새가 분분한 대목이다.
미국은 이라크남부에 미사일공격을 함과 동시에 이라크공군기의 비행을 금지하는 구역을 지금까지의 북위32도 이남을 북위33도로 확대하는 조치까지 발표했다.이라크 공군기들은 바그다드의 턱밑에서도 날개를 접어야 한다.후세인의 이라크는 주 권국가가 받을수 있는 최대한의 모욕을 당하고 있다.
걸프전때와 달리 미국의 이번 군사행동을 지지하는 나라는 영국과 독일,그리고 미지근하게나마 일본 정도에 그친다.미국의 군사행동이 쿠르드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앞으로 미국에는 큰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이라크.이란.터키.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의 국경이 마주치는 5백80억평의 지역에 사는 2천만 쿠르드족은 지구상에서 국가를갖지 못한 최대의 민족이다.
쿠르드문제의 해결은 바로 이점을 이해하고 동정하면서 쿠르드족내부의 화해를 유도 하는데서 시작돼야 한다.후세인은 쿠르드 문제의 절반도 안된다.이것이 미국의 미사일공격이 정치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정당성에서는 국제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영희 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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