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정위 계좌추적권 부활 문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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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공정거래위원회와 열린우리당이 올 2월 없어진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을 부활키로 했다. 3년 연장된 계좌추적권이 자동 폐기되자 다시 연장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부당 내부거래가 늘어 불가피하다'는 공정위 주장도 일리는 있다.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시.감독은 강화돼야 한다. 경영의 투명성 제고는 필수적인 과제다.

그러나 그 방법이 대기업을 범죄집단시하고, 그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돼서는 곤란하다. 계좌추적권은 지금도 검찰이나 국세청.금감원 등이 가지고 있다. 계좌추적이 필요하면 정부 내 정보교류나 공조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런데 공정위가 굳이 독자적인 계좌추적권을 갖겠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밖에 안 보인다. '나도 기업이 떨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겠다'는 관료 이기주의 발상은 아닌가. '3년 시한부'라고 하지만 3년 전, 또 그 전에도 똑같은 논리로 계속 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떳떳하지 못한 방법이다.

여러 조사기관에서 기업을 범죄집단시해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업들이 주눅 들지 않겠는가. 이는 금융거래의 비밀을 보장하는 금융실명제의 취지에도 어긋난다. 계좌추적권이 아니라도 외부감사제 등 기업활동을 감시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무척 어렵다. 그나마 몇몇 대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뚫은 덕에 이나마도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대기업들이 늘어나도록,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마음껏 뛸 수 있도록 국내 규제를 풀어주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공정위는 손발을 묶을 궁리만 하고 있으니 이러고도 경제가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건가.

기업의 불법을 방치하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저기 간섭하는 기관이 많아지면 그만큼 기업하기는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공정위 계좌추적권 부활은 적절치 않다. 투명성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다. 공정위는 자신의 권한 강화보다 경제 살리기에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