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부결 ‘선거판 지진’… 매케인에 더 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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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금융위기가 또 다시 대선판을 뒤흔들었다.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선거 이슈는 블랙홀처럼 경제 문제로 집중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 둘다 부결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에서 유세 중이던 오바마는 법안을 통과시킨 의회를 칭찬하는 성명서를 미리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매케인도 이날 오하이오주 유세에서 법안에 대해 신뢰감을 표시했을 정도였다.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달 29일 네바다주 리노 공항에서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다. [리노 AP=연합뉴스]

그러나 뜻밖의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양 진영은 충격에 휩싸였다. 부결이 가져올 미 금융시장의 파장 때문이다. 두 후보는 즉각 상대방에게 부결 책임을 전가하며 공방전을 벌였다. 특히 매케인 진영은 오바마 때리기에 적극 나섰다.

매케인의 선임 경제 보좌역인 홀츠 이킨은 “매케인은 법안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수십 통이나 했다”며 “법안 부결은 오바마와 민주당이 국가에 앞서 정치를 우선한 데 따른 실패”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표결 직전 부시 행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공격한 것을 놓고 “의장의 당파적 주장이 표결에 영향을 미쳤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빌 버튼 오바마 측 대변인은 “매케인 진영의 극심한 당파적 공격이야말로 미 유권자들이 왜 워싱턴 정치를 혐오하는지 극명히 보여준다”고 반박했다.

양측이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이번 부결 파문은 매케인에게 더욱 큰 타격을 입힐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미 유권자들의 금융위기에 대한 비난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에 집중돼 같은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그래서 매케인은 선거 유세까지 중단하고 금융구제안 통과에 온 힘을 쏟아 왔지만 결국 헛수고로 끝난 셈이 돼 금융위기란 덫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됐다. 게다가 공화당에 대한 그의 영향력도 한계를 드러내 정치력이 상처를 입게 됐다.

그동안 여러 갈래로 나뉘어 온 대선 이슈가 이번 부결 사태로 ‘경제 회생’으로 모아지면서 금융위기 이후 지지율이 추락한 매케인의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때 재미를 봤던 ‘페일린 효과’도 연이어 터지는 ‘페일린 비리 의혹’으로 급격히 빛이 바래면서 매케인은 갈수록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다. 매케인 측이 2일 열리는 페일린과 조 바이든 간의 부통령 후보 TV 토론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킬지가 관건이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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