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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극복 캠페인 핑크리본] “삶은 콩, 과일 주스, 운동…스트레스는 절대 안 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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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처제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지요. 처제는 1998년 말기암 판정을 받고 3년간 치료 받다가 저세상으로 갔거든요. 아내마저 유방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광주에 사는 서동열(61)씨는 오전 4시30분이면 일어난다. 가톨릭 신자인 서씨의 첫 일과는 기도다. 1시간 동안 기도에서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아내의 쾌유를 기원한다. 30분 동안 가벼운 운동을 마치면 그는 바로 콩을 삶는다. 아내에게 갈아주기 위해서다. 아내에게 삶은 콩을 갖다준 뒤 그는 잠시 TV를 본다. 30분쯤 지나자 야채·과일 주스를 만들기 위해 주방으로 간다. 아내에게 주려는 것이다. 사과·브로콜리·당근 등 5~6개의 야채와 과일을 갈아 만든다.

아침식사는 현미·콩 등 5~6가지 잡곡으로 반 공기만 한다. 반찬은 청국장·된장찌개·야채가 주다. 밥상을 차리는 일은 대부분 서씨의 몫이다. 식사를 마치면 오전 9시부터 아내와 4~5시간씩 산에 오른다. 오후 2시쯤 집에 오면 쇼핑 등 볼 일을 본 뒤 오후 7시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2시간 동안 운동한 뒤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든다.

서씨는 2004년 3월 28일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 3월 28일은 아내 김옥순(55)씨가 유방암 판정을 받은 날이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던 아내 김씨는 병원으로부터 종양 같은 것이 발견됐다는 말을 들었다. 대형 병원 정밀조사 결과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내 김씨는 “당시 벼락 맞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충격은 컸다. 김씨의 동생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김씨마저 유방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서씨는 “하늘이 깜깜했다”고 말했다.

“2001년 처제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지요. 처제는 1998년 말기암 판정을 받고 3년간 치료 받다가 저 세상으로 갔거든요. 아내마저 유방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병원에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다행히도 김씨는 유방암 초기였다. 오른쪽 가슴을 모두 절제했다. 하지만 10일이 지나자 왼쪽 가슴에도 종양 같은 것이 발견됐다. 암은 아니었지만 부분 절제 수술을 했다. 병원에서 15일간 입원한 뒤 김씨는 퇴원했다. 남편 서씨는 이때부터 1년간 서울 큰형 집에 묵으며 산에 오르길 반복했다. 이전까지 운영하던 주유소는 동생에게 맡기고 아내 병시중에 모든 걸 다 걸었다. 아내는 항암치료로 기력이 없어 쓰러질 것 같았지만 서씨는 아내의 손을 이끌고 산을 올랐다. 정상인은 20분 만에 걸어갈 거리였지만 이들은 2~3시간이 걸렸다. 아내가 산을 오르다 몇 번씩 쓰러졌지만 서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 집에 있으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산을 오르게 하고 산에서 하루 종일 머물다가 내려오곤 했습니다.”

2004년 6월 서씨 소유의 주유소가 우수 주유소로 뽑히는 덕분에 서씨 부부는 다른 부부와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가게 됐다. 일본 여행의 상당 부분은 온천 관광이 포함돼 있었다. 유방암 수술로 오른쪽 가슴이 없는 데다 항암치료로 머리마저 듬성듬성한 아내에게 다른 사람과의 온천 여행은 ‘고통’이었다. 이때 서씨는 ‘아내에게 바치는 글’을 CD에 담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내용을 틀었다. 그 내용을 본 참석자들은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그들은 아내를 탕으로 데리고 다니며 자부심을 갖고 살라고 격려까지 해줬다. 아내는 이때부터 힘을 얻었고 자신있게 활동했다.

김옥순씨(右)는 남편과 함께 MTB(산악자전거)를 즐긴다. [프리랜서 오종찬]

운동도 열심히 했다. MTB 광주 동호회와 전국 규모의 산악회에 가입할 정도로 운동 매니어가 됐다. 아내 김씨는 “예전까지만 해도 운동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운동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2007년 7월에는 백혈병·유방암 환자와 함께 히말라야산에 오르기도 했다.

서씨는 유방암 환자의 남편이 해야 할 첫 번째 일로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환자를 위해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고 여행도 함께 자주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년 10월이 되면 이들 부부는 설악산으로 간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다. 서씨는 “ 환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일 무서운 것’이 음식 관리”라며 “지방이 있는 고기류, 짠 젓갈류, 자극성 있는 음식 등은 환자에게 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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