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올림픽] 냉전시대 국가간 경쟁이 스포츠과학 이끈 1등 공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미국의 토머스 버크가 1896년 아테네올림픽 남자 100m에서 우승했을 때 기록은 12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도노번 베일리(캐나다)는 9초84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08년 전 아테네에서 엘리 클락(미국)은 1m81㎝를 뛰어넘어 남자 높이뛰기를 제패했으나 100년 후 찰스 오스틴(미국)은 2m39㎝를 넘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온 올림픽의 역사는 스포츠 과학의 역사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더 높이, 더 빨리, 더 힘차게'를 외치는 동안 스포츠 과학은 '더 가볍게, 더 가늘게, 더 정확하게'를 외쳤다.

국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는 올림픽은 내셔널리즘을 부추겼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체제는 올림픽에서의 국가 간 경쟁을 격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스포츠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구(舊)소련이 이끄는 동구권 스포츠 과학은 엘리트 스포츠의 경기력 향상에 중점을 두었다.

약물을 투여해 근력과 지구력을 향상시키는 도핑(doping)이 성행, 7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선수의 뇌에 전류를 흘려 운동 동기 수준을 상승시키는가 하면 여자 선수를 임신토록 해 심폐기능을 향상시킨 후 중절수술을 해 경기에 출전시키는 사례도 있었다.

컴퓨터 분석기술의 발전과 함께 경기 분야의 발전도 뒤따랐다. 호주의 수영 스타 이언 소프의 킥 동작은 일반 선수의 세배가량 빠르지만 팔 동작은 매우 느리다. 소프의 영법은 컴퓨터가 뒷받침한 인체역학의 결과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