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제2번 비가(悲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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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춘수(1922~) '제2번 비가(悲歌)'전문

아내라는 말에는
소금기가 있다
보들레르의 시에서처럼
나트리움과 젓갈 냄새가 난다
쥐오줌풀에 밤이슬이 맺히듯
이 세상 어디서나
꽃은 피고 꽃은 진다
그리고 간혹 쇠파이프 하나가 소리를 낸다
길을 가면 내 등 뒤에서
난데없이 소리를 낸다
간혹 그 소리 겨울밤 내 귀에 하염없다
그리고 또 그 다음
마른 나무에 새 한 마리 앉았다 간다
너무 서운하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가 하늘의 천사를 향한 노래라면, 김춘수의 비가는 지상으로 내려와 한결 다정하다. 먼저 떠난 아내의 빈 자리에 꽃이 피었다 지고, 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간다. '아내'라는 말에 배어 있는 소금기와 젓갈 냄새. 그 익숙한 아름다움을 너무 늦게야 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천사는 멀리 있지 않다. 이미 당신 곁에, 혹은 당신 등 뒤에 와 있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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