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감동은 제발 그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1호 07면

일러스트 강일구

KBS 오락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 팀이 부산 사직야구장을 50석이나 차지하고 녹화를 해 욕을 엄청 먹은 뒤 인터넷에는 이를 비꼬는 ‘1박2일 야구장 편 예상 자막’이 히트를 쳤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아직 방영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사직야구장 편에서는 객석에서 응원하는 출연진과 관중의 얼굴이 흐르며 그 위로 ‘모두가 하나 되어 외치는 함성’ ‘야구라는 스포츠 하나만으로 국민이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에 이어 ‘승부보다 중요한 그것, 우리는 오늘 그것을 배우고 돌아갑니다’라는 자막이 흐르며 끝맺음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동안 이 프로가 만들어 왔던 자막의 ‘감동’ 패턴을 패러디한 것이다.

하늘을 찌르던 ‘1박2일’에 슬슬 불만이 터지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감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려 야심만만하게 기획했던 ‘백두산’ 편부터였다. 슬로 모션에 구슬픈 음악을 쫙 깔면서 독도 앞바다에서부터 남해·서해 바다의 물을 한데 모아 천지의 물과 합쳐 붓는 이벤트 장면에서는 ‘오버’스러움에 민망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포털사이트에서도 ‘1박2일’이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려야 할 것으로 ‘억지 감동’이 1위로 뽑혔다. 하지만 지난주 배추밭 편에서도 ‘배추 한 포기에 담긴 손끝의 정성을 알 수 있었던 시간’ 같은 닭살스러운 자막을 꼭 빼놓지 않는 이 과잉 감동은 제작진으로서는 버리기가 힘든 수인가 보다.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도 없다. 웃자고 보는 프로그램에서 감동을 자아낸다면 더한 보너스가 없겠지만 억지 감동을 만들어 내려다 보면 마음도 안 움직이고 웃음도 잃어버린다.

요란스럽고 신파스러운 멘트를 쏟아 내며 감동을 지어 내려 애쓰는 강호동보다 투명 테이프로 코를 붙이고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한번 신나게 깔깔댈 수 있게 만드는 강호동이 더 좋고, 힘든 노력 끝에 볼룸댄스 대회에 참가하고 눈물 흘리는 ‘무한도전’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엉덩이 사이에 나무젓가락을 끼고 몇 개나 부러뜨릴 수 있나 신기록에 도전하는 그 허무맹랑한 웃음이 더 ‘무한도전’스럽다.

연예인들의 시사토크 프로로 참신함을 인정받았던 MBC ‘명랑히어로’는 갑자기 ‘가상 장례식’이라는 ‘감동’스러운 포맷으로 변해 버리며 뜬금없이 정체성을 탈바꿈시켰다. 이경규·김구라 등의 장례식을 치르며 게스트들이 이야기 속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는 의도였는데, 결과는 장례식에 참가한 손님들의 이야기는 두 사람의 ‘뒷담화’ 개그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

추석 한 주 특집인 줄 알았는데 당분간 이 포맷이 유지될 것이라고 하자, ‘명랑히어로’의 매니어들이 ‘외압설’까지 이야기하며 원래 시사 토크쇼의 분위기를 살려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닌 게 아니라 몇 주 동안 계속해 똑같은 장례식을 볼 생각을 하니 벌써 지겨워진 느낌이다.

‘명랑히어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만날 자기네 연예계 이야기나 신변사 같은 딴 세상 이야기만 하던 연예인들이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이 고민하는 시사적 소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공감을 던져왔다. 그런 팬들로서는 갑자기 그런 참신한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감동도 못 주는 엉성한 코미디로 전락한 새 포맷이 황당할 뿐이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몸을 던지는 웃음이 만들어진 억지 감동보다 훨씬 더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