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연들 모여 ‘해운대 결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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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이 눈부신 26일 낮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백사장.

방패연 두 개가 창공에 높이 떴다. 심판이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을 불자 초반 탐색전을 벌이던 두 연이 어느새 엉겨 붙었다. 선수들의 얼레질에 따라 연들은 곤두박질치다가 솟아오르고, 빙글빙글 돌기도 한다. 관중석에서 “끊었다”는 탄성이 터지는 순간 연 한 개가 비실비실 바다로 떨어진다. 사라져 가는 민속놀이로만 알고 있던 연날리기가 당당한 ‘스포츠’로 대접받고 있다.


이날 개막한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세계사회체육연맹 주관) 첫날 첫 경기로 연날리기 예선이 열렸다.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네덜란드·미국 등 14개국에서 300여 명의 선수가 출전해 연싸움·예술연·스포츠카이트 등 세 종목에서 기량을 겨뤘다. 가장 관심을 끈 종목은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연싸움이었다. 135명의 출전자 중에는 국제만자(Manjha·프랑스어로 연싸움이라는 뜻)클럽 회장인 루도비치 프티(45·프랑스), 2004년 월드컵에서 2위를 차지한 우두상(74·한국) 선수 등 세계적인 강자들도 포함됐다.

프티는 예선 첫 경기에서 상대 실에 연이 찢기는 바람에 지고 말았다. 프티는 “운이 나빠서 졌지만 아름다운 해변에서 멋진 경기를 했다”며 즐거워했다. 세계랭킹 2위 우두상 선수도 조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복병’ 복기민(45·한국) 선수에게 져 탈락했다. 70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우씨는 “연싸움에는 바둑보다 더 많은 수(手)가 있어요. 몸과 머리를 동시에 써야 하는 연싸움만큼 건강에 좋은 스포츠도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사업을 하는 복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서울 난지도 공원에 모여 연싸움을 합니다. 스릴이 넘치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그만이죠”라며 연싸움 예찬론을 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한국연날리기보존회’ 사이트는 회원이 3000명이 넘고, 대다수가 20~30대라고 한다.

연날리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 중 하나다. BC 200년에 그리스 장군이 연을 날렸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연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전해진다. 인도에서 성행했던 연날리기는 프랑스를 거쳐 최근 유럽에서 생활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 국제만자클럽이 주관해 2년에 한 번씩 월드컵도 연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이 대회는 지난 5일부터 6일간 프랑스 디에프에서 열렸는데 80개국이 참가했고 연인원 20만 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한편 103개국에서 5000여 명이 참가한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는 26일 사직체육관에서 개막식을 하고 10월 1일까지 엿새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이 대회에는 궁술·요가·게이트볼 등 생활 스포츠와 민속 스포츠가 열리고, e-스포츠·X-스포츠 등 젊은이들이 즐기는 종목도 포함됐다.

부산=정영재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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