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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種청소' 생생히 증언하자 경악-유고 戰犯재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한국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전직대통령들을 법정에 출두시킨 가운데 검찰의 구형이 내려진 하루뒤인 6일 네덜란드의헤이그에서는 「인류의 존엄성 바로 세우기」를 위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옛유고의 전범들과 증인들을 법정에 출석시킨 가운데진행된 전범재판이었다.
특히 이날은 보스니아 각지의 수용소에서 조직적으로 보스니아 여인들을 강간,「인종 청소」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전범들을 결정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증인(의사)의 증언이 예정돼 있어 재판에 대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
이러한 관심을 반영,재판정이 위치한 헤이그 중심부의 에이전(AEGON) 보험회사 건물 입구엔 재판시작 1시간전부터 이날의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세계각국에서 기자.법학전공학자.학생.재판관련자들이 모여들었다.
듣기만 해도 끔찍한 인종청소와 강간.고문.잔혹한 폭행을 일삼은 세르비아계 전쟁범죄자들을 심판하는 역사의 현장인 전범 재판장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자그마했다.
그러나 재판정 안은 전범들을 반드시 응징하고야 말겠다는 검찰측의 단호한 의지와 만의 하나라도 인권 유린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변호인측의 논전으로 매우 긴장된 분위기였다.오전 10시20분.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간수 두산 타디치가 피고인석에 섰다.
타디치는 보스니아의 오마르스카.케라테름.트르노폴예 수용소에서이슬람교도에 대한 살인.강간등 34건의 전범 행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으나 계속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인물.
검찰은 곧바로 당시 해당 지역에서 의사로 활동했던 바시프 구티치를 증인으로 내세워 증인신문을 시작했다.
구티치는 자신이 치료했던 소녀들이 세르비아계 군인들에게 강간당한 진상을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강간이 시작되면서 부녀자들은 절망에 빠졌으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살인이나 폭행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바로 치욕적인강간이었습니다.』 『12세밖에 안된 소녀까지 유린당하고 6개월난 아이를 가진 19세 소녀 어머니는 7명의 세르비아계 병사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혔습니다.』 그는 증언 첫머리마다 거의 습관적으로 「불행하게도」라는 단어를 반복했다.그러나 피고인 타디치는 전혀 기가 죽지 않은채 구티치의 증언을 반박할 목적인양 노트에 무언가 열심히 기록을 했다.
세계각국에서 온 방청객들은 영어.프랑스어및 보스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어로 동시에 통역되는 헤드폰을 쓰고 경청했다.
증언이 계속되다 세르비아계 민병대나 옛유고군 소속이 아닌 민간인 타디치가 세르비아계 군인들과 함께 이슬람계 주민들의 학살에 가담했다는 증인측 주장에 대해 변호인단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논란이 벌어졌다.
증인이 타디치가 이스람계 주민들중 제거할 사람들의 명단을 적은 것으로 보이는 서류를 갖고 세르비아계 군인들과 무언가 상의하는 것을 봤다고 말하자 변호인단이 『분명하지도 않은 서류를 살해대상자 명부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검찰측은 미리 준비한 비디오테이프와 사진을 통해 타디치의 가담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 애를 썼다.
재판부는 아무런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서 재판이 공정하게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한차례 정회를 거쳐 오후 1시15분 구티치에 대한 증인신문이끝났다.오후 2시45분부터는 60번 증인 세피크 케시치에 대한질문이 이어졌다.
케시치는 검찰측 질문에 대해 인종 청소과정을 설명했다.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되지 않아 갑자기 탱크 1대를 앞세운 세르비아계 군인들이 코자라츠 마을에 진입해왔습니다.군인들은 모두 집에서 나오라고 소리치고 영문을 모르고 거리에 나선 주민들을 마구 폭행했습니다.그리곤 대기시켜 놓은 버스에 주민들을 분승시켜 수용소로 끌고 갔습니다.장소가 매우 좁아 서로 겹쳐서 간신히 누울 수는 있었지만 배가 고파 잠이 오질 않았고 1천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끌려갔지만 화장실은 단지 1개밖에 없었습니다.구타도 매일같이 자행됐습니다.더이상 얼굴을 못보게 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케시치는 피고인석의 타디치를 노려보며 증언을 이어갔다.
『어느날 밤 갑자기 수용소 밖으로 불려나갔는데 타디치가 이름과 출신,무기소지 여부를 물었습니다.그리곤 갑자기 내 배를 마구 때려 쓰러뜨렸습니다.같이 끌려간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신세였습니다.』 또 다시 정회를 거쳐 오후 4시20분.
세번째로 출두한 증인을 대상으로 질문이 쏟아졌다.타디치의 집에서 한집 건너 살았던 증인이 수용소로 끌려가게된 경위를 밝히는 과정에서 이날의 공판은 중단됐다.
이튿날 오전 다시 속개하기로 하고 재판부는 산회를 선포했다.
재판정을 빠져나가면서도 타디치는 여전히 기가 죽지않은 표정이었다.그러나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수많은 눈동자들은 경악과 분노에 떨고 있었다.
헤이그=한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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