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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黨舍로 가는 길 철저 봉쇄-反정부시위 인도네시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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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선바루 메가 해운회사의 장열(張烈)이사는 2일 오전 자카르타무스티카 센터의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꼼짝말고 집에 있으라』는엄명을 가족들에게 내렸다고 했다.
지난달 27일 인도네시아민주당(PDI)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여사의 당수직 박탈을 계기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이후 벌써 1주일째 가장(家長)으로서 張이사가 계속 가족들에게 내리고 있는 지시다.
張이사는 또 요즘 매일 오후가 되면 현지 직원들을 조기퇴근시키고 있다고도 했다.평소 인도네시아인들은 화교들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으므로 요즘처럼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다 보면 자칫 張이사와 같은 화교들의 가족이나 사무실 직원들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닌게 아니라 1일 기자가 자카르타 시내에 들어섰을때 이미 자카르타 시경은 살렘바 라야 거리등 시위가 벌어지기 쉬운 자카르타 시내 12개 거리를 지정,이 지역의 사무실 직원들은 오후6시 이전에 귀가하도록 당부하는 권고문을 이미 돌 려놓고 있었다. 이에따라 주요 시위 대상 거리가 밀집해있는 차이나 타운은요즘 대낮에도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아 썰렁했고,메가와티가 당수직 고수를 주장하며 버티고 있는 자카르타시 동북부 PDI당사로 가는 길은 아예 막혀 있었다.
적게는 2명,많게는 48명까지 사망했다는 소문이 무성한 지난주말의 시위는 이처럼 1주일이 넘도록 자카르타 시의 일상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과연 30년 집권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에도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는 것일까.
『수하르토에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한 현지인은 기자에게현 정국을 매우 조리있게 설명해주었다.다만 그는 철저한 익명을요청하며 매우 조심스러워했다.아직 인도네시아는 정부를 마음놓고공개적으로 비판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수하르토에의 도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첫째,이번 시위는 지난 74년 대학생들에 의한 반(反)수하르토 시위 이래 20여년만에 터져나온 첫 시위라는 데 의미가 있다. 시위대는 특히 이번에 경찰을 자극하기 위한 방화와 파괴를아주 교묘하게 활용,사태 확대를 꾀했다.
둘째,민주화로 나아가고 있는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지역적 추세도 인도네시아의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86년 필리핀 마르코스 정권의 붕괴,90년 방글라데시의 민주화 시위,지난해 7월 아웅산 수지 여사의 연금 해제 이후 불붙고 있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등이 모두 인도네시아를 자극하고 있다. 특히 한 세대에 걸친 수하르토의 장기집권은 인도네시아 민주화운동 세력의 공격 표적이다.
셋째,경제발전과 함께 골이 깊어지는 빈부 격차에 의한 상대적박탈감이 수하르토 친인척들의 경제실권 장악에 대한 반발을 부추기는 요소다.
그러나 자카르타에서 만난 다른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같은 「도전의 시작」에 공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하르토의 철인 통치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우선수하르토를 대체할 지도자 또는 세력이 없습니다.
또 그는 군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역시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매우 현실적인 점을 짚었다.
실제로 수하르토는 지난 67년 집권후 역대 부통령을 단 한차례도 중임시키지 않았다.후계자의 싹을 철저히 잘라온 것이다.게다가 인도네시아엔 사실상 야당이 없다.집권당인 골카르(직능그룹당)는 물론 PDI와 통일개발당(PPP)등이 모두 정부의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또 야당 당수인 메가와티가 비록 지지 기반을 넓혀나가고 있다지만 사회 각계에 깊숙이 진출한 군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기다 그간 외신들이 전하던 수하르토의 건강 악화설이 정작 자카르타에선 별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의 건강은 아직 양호할 뿐 아니라 98년3월의 대통령선거에또 다시 나올 수 있을 만큼 좋다는 것이다.75세의 고령임에도한주 세번씩 골프 나인홀을 빠짐없이 돌고 있다고 한다.
최근 독일에서의 건강 검진은 자신의 건강이 98년선거에 나설수 있을 만큼 좋다는 것을 외국 의료기관에서 확인받아 국민들에게 보여주려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 이곳 현지인들의 분석이기도하다. 특히 회교도가 90% 이상인 인도네시아에서 메가와티가 기독교.천주교들이 혼재된 PDI 소속이란 점도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수하르토의 적수가 못된다는 것이 중론이다.그렇다면 수하르토는 왜 그렇게 메가와티에 대해 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대한 한 현지인의 대답이 재미있다.
『인도네시아인들의 독특한 정치문화 때문이다.투표에서 득표율이예전보다 높아야 승리한 것이지 낮아지면 패배로 간주된다.』 아직 상대가 안되는 메가와티에게 수하르토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이같은 이유 때문이라면,인도네시아 민주화 운동의 1차 목표는 「집권」이 아니라 「득표」일지도 모른다.
자카르타=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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