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뛰놀 친구가 없는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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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어제는 휴일이라 온 집안식구가 늦잠으로 오전을 보냈다.
느지막하게 아침겸 점심을 먹고 남편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는데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이 어지간히 심심했던지 짜증섞인 목소리로 『심심해 죽겠다』고 했다.아무도 놀자는 소리가 없고 이쪽에서 놀자고 하면 학원에 간다,공부해야 한다며 상 대아이의 엄마가 아이들을 놔주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던 남편은 『심심하기도 하겠다.놀 친구도 없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집안에만 있어야 하니』하며 측은하다는 생각에서 두 아이에게 1천원씩 주며 과자를 사먹으라고 했다.아이들은 금세 환한 얼굴이 되면서 곧장 가게로 달려갔다.그런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요즘 아이들의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이 지어져 있는 것같아 안쓰러웠다.휴일이나 학교 끝난 시간이돼도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다.방학이 돼도 별 차이가 없다.
우리가 클 때만 해도 학교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고무줄놀이.공기놀이.제기차기등으로 지냈으며,특히 여름이면 냇가를 찾아다니며 고기도 잡고 미역도 감으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능수능란하게 개구리헤엄을 치며 세월을 보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고향이 없어진 것같다.남편의 직장을 따라 초등학교를 졸업하는데도 두 세번은 옮겨야 하고 동네마다 아이들을 가둬 키우니 친구와 함께 뛰노는 마음의 고향은 더더욱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아이들은 과자를 사들고 초인종을 누른다.우리가족은 배드민턴을치기로 하고 집에서 멀지 않는 초등학교로 갔다.마침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아이들의 양해를 얻어 남편과 아들도 그들의일원이 돼 열심히 공을 쫓아다녔다.우리 모녀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남편과 아들이 공을 한번이라도 빼앗아 차면 환호의 박수를 치며 열심히 응원했다.
전반전 40분을 겨우 마치고 남편은 체력상 기권했다.나는 남편의 기권을 빌미로 아들도 기권하게 만들었다.
부자는 운동장 구석에 설치된 수돗가에서 흘린 땀을 씻어내느라정신이 없었다.오랜만에 두사람의 얼굴에 어리는 진한 행복감을 확인하며 나 또한 덩달아 행복해진다.
나는 부자의 등뒤에 대고 『앞으로 이런 시간을 자주 갖도록 합시다,응』하고 외쳐본다.
문선이 충남태안군태안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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