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 산은 민영화에 불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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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발 금융위기의 불똥이 공기업 민영화 정책으로도 옮겨붙을 것 같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신청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산업은행·우리금융 등의 공기업 지분 매각 추진 여건도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산은이다. 산은은 ‘내년 1~2월 지주회사 전환→5월께 증시 상장’이라는 민영화 일정을 잡고 있다. 증시 상장 전에 지분의 10~15%를 국제투자은행(IB)에 먼저 매각해 국제 금융계의 관심을 끌고 몸값도 올리겠다는 구상도 했다. 민영화 성공의 관건은 투자자 모집이다. 그런데 일은 꼬이고 있다. 우선 리먼브러더스·메릴린치 등 세계적 금융회사들이 간판을 내리는 위기가 터지면서 큰손 투자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HSBC가 외환은행 인수를 포기하고 모건스탠리에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투자 여력이 있는 금융회사들은 한국이 아니라 월가를 기웃거리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 괜찮은 물건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여건도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치권에선 산은이 지향하는 IB 모델의 타당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쪽에선 “산은 민영화 방식 재검토”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산은 민영화와 맞물려 있는 금산분리 개혁에 대한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금산분리가 무산되면 국내에서도 자금력 있는 투자자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증시 추락도 공기업 민영화의 발목을 잡을 조짐이다. 당장 우리금융 지분 매각에 고민이 생겼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지분 7% 매각을 염두에 뒀지만 주가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우리금융 주가는 19일 현재 1만1700원으로 최근 1년간 최고치인 2만2350원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우리금융에 투입된 공적자금을 전액 회수하려면 주가가 2만원을 넘어야 한다.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달 말 “주가가 회복되지 않으면 지분 매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예금보험공사가 우리금융 지분 5%를 매각할 당시 가격은 주당 2만2750원이었다. 하이닉스와 현대건설 등 14개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지분 매각도 쉽지 않아 보인다. 주가가 떨어지는 바람에 헐값 매각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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