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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 피델리아 키로트 8백M서 金보다 값진 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30일(한국시간)육상 여자 8백경기가 열린 메인스타디움에서는괴이한 현상이 벌어졌다.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1위를 차지한 바스테르코바(러시아)보다 2위를 차지한 선수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기립박수의 주인공은 쿠바의 아나 피델리아 키로트(33).
전신 화상으로 도저히 살 가망이 없던 그녀가 불행했던 과거를바람에 떨치고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을 차지했기 때문.
높이뛰기 최강 하비에르 소토마요르가 반할 만큼 빼어난 미모와87~90시즌까지 여자 8백에서 39연속 우승을 차지한 건강한몸이 한순간 화마로 그을려진 것은 93년1월.
소토마요르의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8백에 나서 동메달을 획득했던 그녀는 임신 7개월째인 이듬해 1월 부엌에서 석유풍로가 폭발하는 화재로 몸 전체에 중화상을 당하고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카스트로대통령까지 소생여부에 깊은 관심을 가질 정도였던 그녀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고 살을 에는 엄청난 고통속에서도 오직 달리겠다는 의지로 다시 일어섰다.
보통의 화상치료 방법을 무시하고 허벅지대신 허리피부를 얼굴과목에 이식할 정도로 그녀의 트랙을 향한 재기 의지는 상상을 초월했다.사고후 1년동안 무려 21번이나 계속된 외과수술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피부가 찢어지는 육체적 고통을 참아가며 훈련에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녀는 이 사고로 아이를 유산하고 애인인 소토마요르도 곁을 떠나는 시련속에서도 올림픽 제패를 향한 꿈은 버릴 수 없었던 것. 사고후 1년반만인 95쿠바육상선수권대회 8백에서 우승,재기에 성공한 그녀는 한달후 당시 시즌최고기록인 1분56초11을마크하며 세계선수권을 제패했고 마침내 올림픽에서도 은메달을 따내 전세계를 감동시켰다.
그녀는 경기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할머니가 내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셨다』면서 『나의 성공으로조국 쿠바와 고통속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애틀랜타=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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