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선 휘파람을 불지 마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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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극장에서 “맥베스”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뱉었다가는 건물 바깥으로 쫓겨날 수도 있다. 굳이 ‘맥베스’를 지칭하려면‘스코틀랜드 연극’(that Scottish play)이라고 해야 한다. 셰익스피어의 연극‘맥베스’를 상연 중인 경우는 물론 예외다. 이같은 불문율을 어겼을 경우 극장 건물을 세 바퀴 돌아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추악한 말에 이어 ‘햄릿’‘한여름밤의 꿈’에 나오는 대사 한 마디씩을 주문처럼 외면서. 피비린내 나는 비극적 내용도 그렇지만‘맥베스’공연 때 화재나 살인 사건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1847년 뉴욕 애스터 플레이스 오페라 하우스 폭동도 ‘맥베스’ 공연 도중 일어났다.

극장만큼 미신, 금기, 징크스가 많은 곳도 없다. 현실 세계를 벗어난 환상과 마법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실수로 공연이 실패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반영이다. 관객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 이유가 명확치 않을 때도 많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미신을 낳는 것이다.

무대로 나가는 동료 연기자에게 공연을 잘 하라고 행운을 빌 때 ‘Good luck’ 또는 ‘Have a Great Show’라고 말하면 안된다. 행운을 시샘하는 악령이 오히려 그를 해친다는 믿음 때문이다. 대신 ‘Break a leg’라고 해야 한다. 직역하면 ‘다리 부러뜨려’다. leg는 극장에서 커튼을 뜻하기 때문에 커튼콜을 많이 받아서 커튼을 고장내라는 뜻이라는 설도 있다. 미국에선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을 극장에서 암살한 직후 도망치다 다리가 부러진 배우 존 윌키스 부스에게서 이 표현의 유래를 찾기도 한다.

무대에 처음 나갈 때 발에 걸려 넘어지거나 구두가 삐걱거리는 것도 길조다. 이보다 나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액땜을 한 것이다.

어떤 배우가 무대 의상을 거꾸로 뒤집어 입었다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무대 위에 포도주를 쏟았을 때는 손가락으로 적셔 귀 뒤쪽을 문질러야 한다.

백스테이지에서 휘파람을 불어서도 안된다. 옛날에는 무대 배턴을 움직이는 로프를 선원 출신이 잡아당겼는데 배에서 돛을 올리고 내릴 때처럼 백스테이지에서도 휘파람으로 신호를 주고 받았다. 휘파람을 잘못 불었다간 이를 신호로 착각한 스태프가 무대 장치를 매단 배턴을 내려버리면 연기자가 부상을 입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요즘에야 컴퓨터로 배턴을 조종하고 무전기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무대에서 휘파람을 불지 않는 금기는 여전히 남아있다.

무대 위에서 사용하는 거울, 꽃, 보석, 골동품, 성경책 등 소도구(소품)은 모두 모조품이어야 한다. 물기로 인한 미끄럼을 방지하고 고가품의 분실을 막기 위해서다. 여자 배우의 분장실에 공연 직전 꽃을 배달하는 것도 금기 사항이다. 물론 공연이 끝난 뒤에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검은 고양이는 보통 불운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장에서는 정반대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검은 고양이를 만나면 공연은 대성공이다. 어떤 배우들은 백스테이지에 검은 고양이를 데리고 나타나기도 한다. 런던 웨스트엔드의 아델피 극장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이름은 각각 플럭, 소켓이다. 고양이가 리허설 때 무대에 나타나면 행운이지만 공연 때 무대를 가로지르면 불길한 조짐이다. 극장에서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은 쥐가 값비싼 무대 의상을 갉아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무대 리허설을 망치면 본 공연이 성공한다는 미신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드레스 리허설을 너무 완벽하게 끝내면 자신감이 지나쳐 긴장을 늦추다 보면 오히려 공연이 엉망으로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극 최종 리허설 때 막(幕)의 순서를 거꾸로 해서 고의로 배우들에게 혼란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다.

개막 직전까지는 연극의 마지막 대사를 입밖으로 내뱉어선 안 된다. 작품은 공연을 통해 비로소‘완성’되기 때문이다. 무대 근처에서는 마이클 윌리엄 발페의 오페라 ‘보헤미아의 소녀’(Bohemian Girl)에 나오는 노래‘난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네(I Dreamt I Dwelt in a Marble Hall)’를 부르거나 흥얼거리면 안된다. 침몰 직전 타이타닉 호 위에서 연주되었던 음악이어서 공연에 타이나틱호 대참사와 같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매표소에도 금기 사항이 있다. 유료 관객이 객석에 입장하기 전에 초대권 소지자를 극장 안으로 들여 보내면 그 공연은 흥행 실패로 돌아간다. 남녀 차별이 심하던 시절 여성 관객을 맨 처음 입장시키는 것은 금기였다.

이밖에도 작품 제목에 그린(Green)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그 공연은 롱런 한다, 분장실 탁자 위에 구두를 올려 놓지 말라, 무대 의상에 공작 깃털 장식을 하지 말라, 오프닝 공연 때는 배우에게 노랑색 장미꽃을 선물하지 말라, 뮤지컬 공연 직전 배우들이 작품 속에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지 말라, 무대나 백스테이지에서 바느질 하지 말라, 무대에서 커튼 틈사이로 객석 쪽을 들여다보지 말라, 분장실에서 메이컵 파우더를 엎지르면 파우더 위에서 춤을 춰야 액운을 막을 수 있다 등등 무대 종사자들에겐 별의별 금기 조항이 많다.

징크스는 배우 개개인에 따라 천차 만별이다. 마스코트와 부적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극장을 오갈 때 항상 같은 길로 가는 사람, 항상 다른 길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백스테이지에서 구부러진 못을 찾은 다음에야 무대로 나선다. 구부러진 못은 행운의 ‘V’를 상징한다. 19세기의 테너 티토 브리뇰리는 그가 공연하는 극장마다 사슴 머리를 갖다놓으라고 요구했다. 영국 배우 헨리 어빙(1838~1905)는 오프닝 공연 때마다 자신의 전처에게 초대권 한 장을 보냈다. 연기자 겸 무용수 스코트 샘부코는 무대로 나가가기 5분 전에 꼭 양치질을 한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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