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개인사로 본 그 때 그 시절 ‘드로잉 다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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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조동환·조해준 지음
새만화책, 184쪽, 1만5000원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아는지. 지금은 주름 깊은 아버지에게도 오줌을 못 가려 키를 쓰고 이웃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운동회 날 달리기에서 꼴찌를 하고, 밭 두렁에서 쥐불놀이를 하다 옮겨 붙은 불을 차마 끄지 못하고 줄행랑치던 아버지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아는 자녀는 드물다. 아버지가 입이라도 열라치면 문을 휙 닫고 방에 들어가버리는 요즘 젊은이 중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놀랍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귀와 마음을 열고 아버지의 인생을 기록할 것을 제안했다. 사이좋게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조동환(73)씨와 조해준(36)씨 부자 이야기다.

본래 아들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원칙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오랜 미술 교사 생활 뒤 퇴임했고, 아들도 미술을 전공한 뒤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도 그랬다.

2002년 아들은 문득 아버지가 물려준 미술전 도록(1927년 발행)이 어떻게 아버지 손에 들어왔는지 묻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아버지의 개인사를 들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작품으로 남길 것을 권했고, 아버지는 아들과 대화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6년 만에 나온 결과물은 보는 내내 따뜻하다. 일단 연필이라는 누구에게나 정겨운 도구로 그린 그림 때문이다. 거기다 칠순의 아버지가 막내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어투가 자상하고 따스하다. 맞춤법이 틀리기도 하고 예스러운 표현도 있지만 쑥스러움과 위트도 녹아있다.

배경은 우리네 ‘그 때 그 시절’이다. 유년 시절은 물론이고 징용간 할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산 4년, 전쟁 끝나고 고국에 돌아온 시절, 1970년대 새마을 운동까지 넘나든다. 초등학교 때 가족 모두 장티푸스에 걸렸던 일, 징용간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8일 만에 일본 탄광마을에 도착하던 날 아버지와 목욕탕에 갔던 일 등 가슴 짠해지는 이야기도 많다. 고교에서 다른 한국 학생과 둘이서 “조센 나빠” 놀려 대는 일본 학생 28명을 상대로 싸워 이긴 일화도 후련하다.

신기한 생활의 지혜는 덤이다. 세수할 때마다 이상하게 코피가 잘 터지는데 주변의 권유로 먹을 갈아 먹었더니 코피가 절대 안 난다거나, 과자 폐품 포장지를 삶아 풀을 섞어 종이 찰흙을 만든 뒤 방에 발라 말리면 아주 좋은 장판 대용이 된다고 한다.

드로잉으로 다큐멘터리를 풀어내는 ‘드로잉 다큐’라는 장르가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사를 통해 거대 역사 담론이 담지 못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건 이 책이 분명히 증명한다. 우리 가까이에도 있는 또 다른 ‘놀라운 아버지’들의 존재도 돌아보게 된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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