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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돈 빌려 집 산 사람들 왜 깡통 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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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한다. 지금은 억울하면 부자가 되라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정말 부자가 돼야할 것 같다. 부자가 되면 집 살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아도 되고, 이자를 내지 못해 살고 있는 집에서 쫓겨나는 일도 없다. 무엇보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것과 같은 잘 손질된 잔디 정원에 흰 울타리가 쳐진 교외의 주택”에서 살 수 있다.

이 책은 부자가 아닌, 미국의 서민들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겪고 있는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꿈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오는 집을 갖는 것이다. 이런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무리하게 돈을 빌려 집을 샀지만 이게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거품이 꺼지면서 집값은 폭락했고,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낼 길이 막막해졌다. 집을 팔려고 내놓아도 팔리지 않으면서 결국에는 채권자에게 집을 뺏겨 쫓겨나는 사람들의 얘기다.

지은이는 이 같은 일이 미국 전역에서 광범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월 한 달 동안 압류당한 집이 23만여 세대. 지난해는 150만호였다. 주택압류 딱지 행렬로 뒤덮여 유령마을로 변한 곳도 속출하고 있다. “시카고시 서부에 있는 웨스트 잉글우드지구는 지난해 상반기 동안 1평방마일(780여평)당 압류 건수가 111건에 달했다”는 것이다. 억울한 나머지 사람들은 쫓겨나면서 “자기 집에 불을 지르거나 화장실에 시멘트를 붓고 수도를 망가뜨린다”. 이 때문에 열쇠업이 성장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쫓겨난 집주인들이 돌아와 해꼬지를 못하도록 집 열쇠를 바꾸기 때문이다. 압류 주택을 돌아보는 버스 투어, 쫓겨난 후 맡길 곳이 없어진 가구 등을 보관해주는 대여창고업도 성행하고 있단다.


지은이는 이 같은 참사의 밑바탕에는 정부가 있다고 주장한다. 금리를 낮추고 대출 조건을 완화하고 보조금을 줘서라도 서민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해주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아메리칸 드림을 위한 계약금 구상’은 선의에서 출발했다고 인정한다. 문제는 이렇게 좋은 의도로 출발한 정책이 결국에는 보통사람의 재산을 약탈하는 정책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미 이런 결론을 예측하고 있다. 해롤드 뎀세츠라는 미국 경제학자는 ‘니르바나 정책’을 주장한다. 현실을 뜯어고쳐 니르바나, 즉 열반(涅槃)을 달성하겠다며 의욕을 부리는 정부 치고 결과가 좋은 정부를 못봤다는 내용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정부가 집 마련을 돕겠다고 나서자 온갖 경제주체들이 한탕하러 나섰기 때문이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은행들은 경쟁적으로 대출해주기 시작했다. 아예 신용조사도 하지 않았고, 신용불량자에게도 빌려줬다. 대출자와 은행을 연결시켜주는 모기지 중개인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꼬드겼다. 투자은행들은 모기지은행들의 대출위험 부담을 크게 줄여줬다. 모기지를 인수해 신종 파생금융상품으로 둔갑시켜 팔아줬다. 은행은 이렇게 모기지를 판 돈을 받아 다시 대출전선에 나섰다.

이렇게 엄청난 돈이 몰리면서 집값은 급등했고, 보통사람들은 투기꾼으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무리를 해서라도 돈을 빌려 투기에 나섰다가 집값이 폭락하면서 다들 깡통을 차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는 낮은 금리와 완화된 대출 규제, 부동산 가격의 비정상적인 폭등과 폭락, 인간의 탐욕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전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이었던 그린스펀 비판도 눈길을 끈다. 미국 경제의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린스펀이 이번 참사의 주범(?)이었다는 투다.

요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런 책들 중에서 이 책은 완성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가장 읽기 쉬운 책임에는 분명하다. 부동산 거품 때문에 고통받는 서민들의 얘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특히 “내 임기중 무주택자를 없애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꼭 읽었으면 한다. 비슷한 생각으로 경제정책을 편 부시대통령 때문에 지금 얼마나 많은 미국의 서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경제는 얼마나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 같아서다. 원제 『The Economic Tsunami』.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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