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서리 맞은 LBO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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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인수합병(M&A) 기법으로 각광받는 차입매수(LBO: Leveraged BuyOut)가 국내에서 된서리를 맞고 있다. 법원에서 잇따라 유죄 판결이 나오는 데다 동양그룹의 한일합섬 M&A에 대해 검찰이 최근 칼을 뽑았다.

대법원은 6월 고등법원의 판결을 깨고, 건설회사 신한을 LBO 방식으로 인수한 김모씨에게 배임죄를 적용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2001년 회사정리절차가 진행 중이던 신한의 부동산과 예금을 담보로 신한을 인수했다.

이에 앞서 대법원은 2006, 2007년 한신코퍼레이션·사이어스·전은리스 등 피인수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잡아 이뤄진 LBO에 대해 유죄 판결을 이미 내린 바 있다. 법무법인 세종의 이상현 변호사는 “인수자가 피인수 회사를 대신해 대출금을 갚을 능력이 없거나, 자기 돈 한푼 들이지 않은 LBO에 대해 법원이 잘못을 지적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덩치 큰 M&A는 LBO 방식 많아

LBO 방식의 대형 M&A 사례는 유진의 하이마트 인수, 선세이지의 만도 인수, 이랜드의 한국까르푸 인수 등이다. 이들 모두 피인수 회사의 자산을 담보로 인수자금을 조달했다.

그런데도 법적으로 별 탈없이 진행된 이들 M&A에는 공통점이 있다. 회사가 직접 인수에 나서지 않고 M&A만을 위한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자기자본과 타인 자본을 투입한 뒤 M&A에 나선 것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넬슨 안 미국 변호사는 “SPC를 세운다는 것은 인수자가 자기 돈을 투입한 것을 뜻해 합법성을 띤다. 미국에서 이뤄지는 LBO도 대개 SPC를 통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문제가 된 동양메이저의 한일합섬 인수 역시 SPC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M&A 전문가들이 혼란스러워한다. 동양메이저는 한일합섬 인수를 위해 동양메이저산업이라는 SPC를 설립했다. 돈은 동양메이저산업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조달했다. 동양은 “다른 LBO에 비해 우리는 훨씬 투명하게 자금을 조달했다”고 주장한다.

◆자금 상환 놓고 이견

검찰이 문제삼는 것은 자금 조달보다 자금 상환 측면이다. 5월 13일 동양메이저가 한일합섬을 흡수 합병한 직후 상환된 차입금 2700억원이 한일합섬 자산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로 인해 한일합섬에 손실을 떠넘겼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이에 대해 동양은 “동양메이저가 2월과 5월에 각각 동양메이저산업과 한일합섬을 합병했다. 한일합섬이 없어지고 이미 한 회사가 된 마당에 한일합섬 자산으로 대출금을 갚았다고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동양메이저의 추연우 부사장이 한일합섬 인수 전에 이 회사 이모 전 부사장에게 19억원을 건넨 혐의로 7월 구속된 점을 동양 측은 부담스러워한다. 추 부사장이 거액을 건넨 덕분에 동양이 한일합섬을 손쉽게 인수하고 이 과정에서 한일합섬에 피해가 생겼을 것이라고 검찰은 본다. 이상현 변호사는 “회사법을 엄격히 해석하면 회사와 주주는 별개의 존재다. 설령 주주 100%의 동의로 회사를 매각했다 해도 회사에 손실이 생길 가능성이 1%만 되면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검찰과 동양의 공방은 미국발 세계 금융불안과 맞물려 LBO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 한 증권사의 M&A팀장은 “검찰의 수사가 끝날 때까지 LBO M&A 열기는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자칫하면 범법자로 몰릴 수 있는 판에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전했다.

이희성·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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