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즉심보호실 인권침해 여전-본사취재팀 19곳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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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재수생 朴모(20.서울마포구망원1동)씨는 21일 새벽을 경찰서 대기실에서 꼬박 지새우고 분통을 터뜨렸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대학로에 나갔다가 불법 부착물(경광등)을 달고 다닌 혐의(도로교통법위반)로 오전2시쯤동대문경찰서로 연행돼 조사를 받은 朴씨는 즉결심판에 넘겨지기까지 4시간여동안 경찰서 대기실에 갇혀있었다.
가족들이 달려와 신원보증을 자청하며 귀가조치를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이날 동대문경찰서 대기실에는 모두 7명이 쪼그리고 앉아 즉결심판을 받으러 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가운데 「규정」에 따라 보호조치가 필요한 사람은 술에 취 해 있는 단한명 뿐이었다.
경찰서 보호실의 불법 구금을 금지하라는 경찰의 자체 지시와 불법 구금에 대한 법원의 배상 판결에도 경찰서 즉심 보호실의 인권침해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는 정신착란자나 술취한 사람.자살기도자.미아.병자.부상자등을 제외하곤 즉심 대상자를 구금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즉심피의자 인권침해 시비가 잇따르자 경찰청은 94년 보호실 운영지침을 산하 경찰청과 경찰서에 시달,인권침해의소지가 있는 불법 구금등을 하지 말라고 특별지시까지 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본사 취재팀이 21일 새벽 서울지역 19개 경찰서 즉심 보호실을 돌아본 결과 보호실에 있는 74명 가운데 55명이 주거가분명하고 가족이 있는등 규정대로라면 보호조치가 필요없는 사람들로 나타났다.이들의 혐의내용도 경미한 도로교통법 위반이나 친구들끼리 재미삼아 친 고스톱등이 대부분이었다.이들중에는 경찰서에연행된 뒤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즉심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대해 일선 경찰서 방범지도계 한 실무자는 『귀가시킬 경우십중팔구 즉결심판 법원에 나오지 않는데다 피해자가 있는 경우나구류 대상인 사건등은 궐석재판이 어려워 위법인줄 알면서도 업무처리 편의상 붙잡아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지법은 지난달 10시간동안 불법으로 구금됐다가 즉심에 회부된 柳모(여.서울노원구하계1동)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경찰의 직무상 행한 불법행위로 인해 겪은정신적 고통이 인정된다』며 5백만원의 배상판결을 내렸었다.
김기찬.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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