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모시조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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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현담(1955~ ) '모시조개'

당신은 어청도로 가자고 한다 먼 데 어느 깊은 섬으로나 가자고 한다 주인 없는 그곳에다 집 하나 지으러 가자고 한다 이미 눈발 가득한 목소리로 섬에는 동백꽃 섬에는 등대불 빨갛게 불을 밝힌 눈빛으로 서해 먼 곳으로 가자고 한다 당신의 고운 노을 아래 잔잔히 빛나던 바다는 어린 게들처럼 모래 속에 숨어 들었는지 자꾸만 눈물 속에서도 모래알이 묻어나오는 먼 서해에 가자고 한다 작은 배 하나를 만들어 당신의 하염없는 등대불을 물결쳐 가자고 한다



떠나기 좋은 철이다. 신록들 도처에서 푸르고 새들 나무 이파리 빛깔로 종일 운다. 발길 이르는 땅 위에 꽃들 맹목으로 눈부신데…. 지평선 가까운 곳 황사바람 인다. 눈물 속에 모래알 묻어나오는 길목에 서서 당신은 어청도로 가자고 한다. 그곳에 토굴 하나 짓고 게들처럼 모래 속에 숨어 살자고 한다. 당신과 나, 등대불과 노을, 작은 배에 실려가는 파도의 인드라망을 보고자 한다.

곽재구<시인>

※곽재구 시인의 연재는 오늘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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