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내 생각은…

대북 식량 지원이 효과 거두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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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0년 전 북한 식량난을 조사하기 위해 두만강 인접 중국 지역에 숨어 살고 있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현지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들을 대한 나는 깜짝 놀랐다. 대부분 20대 초반이었던 탈북자들의 키가 초등학생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난쟁이로 만든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1990년대 초반 시작된 극심한 식량난이 아이들의 성장을 멈추게 한 결과였다.

최근 세계식량계획(WFP)이 북한의 8개 도를 대상으로 조사한 긴급 식량안보평가에서 내린 결론은 북한의 식량난이 90년대 후반 이후 10년 만에 최악의 위기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또다시 굶주림에 지친 난쟁이들의 행렬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왜 식량이 부족할까. 이웃 중국의 식량 지원 감소, 한국의 식량 원조 중단, 국제 곡물가 폭등에 따른 상업적 수입 감소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잠재 식량 생산능력은 어림잡아 350만t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북한 인구 2300만 명이 필요로 하는 곡물 소요량 650만t의 절반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식량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료 지원마저 중단되고, 홍수 등 자연재해가 겹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새 정부 출범 후 냉각된 남북관계를 방관만 하고 있을 것인가. 당장 지원하자니 대북정책 기조인 상호협력과 창조적 실용주의에 금이 가고, 여기에 더해 WFP 등 국제사회의 여론도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결국 해법은 인도적 차원에서 우선 지원부터 하는 것이다.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인 상호주의 원칙은 기로에 서 있는 북한을 위해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다만 식량 지원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켜져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 우리 정부가 직접 지원을 하지 말고 WFP나 민간 단체들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물자 지원 경로를 과거처럼 북한 의도대로 끌려다녀서는 안 되며, 지역 간 균형을 고려해 적지에 지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식량 사정이 대체로 양호한 서해안 지역보다 식량난이 극심해 탈북자의 90%이상이, 아사자의 80% 이상이 발생하는 원산을 기점으로 한 동해 북부지역으로 보내져야 할 것이다. 서해안 지역의 경우 동해안 지역보다 1인당 경지 면적이 두 배나 되고 농토가 비옥하기 때문에 비료 지원을 통해 식량난을 해결토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쌀과 비료 등이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를 확인하는 모니터링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김운근 (사)통일농수산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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