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 열자 폐쇄해야 하는 지방공항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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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완공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경북 예천공항이 승객 감소로 문을 닫는다. 그렇다고 예천 지역의 산업이나 인구가 급격히 변한 것도 아니다. 고속도로 개통 등 주변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공항을 지은 결과다. 지난해 전국 지방공항의 적자는 무려 480억원에 달한다. 16개 지방공항 가운데 현재 흑자를 내는 공항은 김해와 제주뿐이다. 이제 고속철 개통으로 적자 폭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또 울진.무안.김제의 공항 건설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는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공항 건설을 중단시키고 다른 방도를 찾아보든지 해야지 뻔히 용도 폐기를 눈앞에 보고도 돈을 붓고 있으니 이런 정부가 정부인가. 건설교통부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속도로든 고속철이든 이미 여러 해 전부터 계획에 따라 건설된 것이다. 이렇게 현실과 괴리된 교통수요 예측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지역배려 등 정치적인 고려가 불가피했다"는 것이 건교부 관계자의 변명이다. 그러나 수요가 없어 결국은 문을 닫을 것이 뻔한 시설을 지역구 의원의 영향력에 따라, 또는 지역감정을 고려해 건설했다면 그것은 공무원의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엄청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비단 공항 건설뿐 아니다. 새만금사업에서 부터 소규모 지방도로 건설에 이르기까지 지역이기주의나 정치적인 이유로 추진된 사업들이 허다했다. 수요예측 및 비용.편익분석과 국토 전체를 포괄하는 거시적 계획의 틀에 맞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정치권의 압력에 무조건 순종하여 직무를 유기한 공무원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주민들도 문제다. 허황되게 이런저런 시설을 짓겠다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시설이 꼭 필요한지부터 따져 보아야 한다. 각자가 내는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왜 모르는가. 정치가 배제된 엄정한 분석에 따라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표 때문에 세금을 낭비하는 후진적 행태는 없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