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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추진도 실용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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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동북 아시아의 세 나라, 한국.일본.중국 중에서 우리는 면적.인구.경제규모 등 어느모로 보나 가장 작은 나라다. 그렇지만 국호만큼은 큰 대(大)자를 붙여 대한민국이다. 이름값을 제대로 하면서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국민 모두가 마음이라도 크게 갖고 딴 나라 사람들에 비해 일당백의 기세로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세 나라의 최근 경제동향이나 경쟁력 추이를 보면 우리 경제에 대한 걱정이 앞설 뿐이다. 중국 경제는 계속해 9% 내외의 고성장 행진을 하고 있다. 10여년간 침체해 있던 일본 경제도 이제는 소생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경기회복은 정부의 부양책 없이도 소비와 투자가 되살아난 경우여서 많은 전문가는 상당히 숨이 긴 상승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 경제도 올해에는 5.5%정도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분기별로는 올해 2분기에 6%대까지 오른 성장률이 그 이후부터 점차 떨어져 4분기에는 4%대가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년 성장은 올해 수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장기 전망은 더 암울하다. 지난 주말 KDI에서 열린 산업경쟁력에 관한 국제세미나에서 어느 일본 학자는 과거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도 일본의 경쟁력은 유지돼 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향후 경쟁력 향상을 위해 일본 정부는 혁신체계와 금융부문의 개혁 등 구체적인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측은 자기 나라의 경쟁력이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과 엄청난 외국인 투자에 따른 기술이전 등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또한 시장경제와 글로벌화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반면에 우리 전문가는 과거 15년간 한국 경제의 경쟁력과 역동성이 뚜렷하게 약화됐으며 그 원인은 주로 정부에 의한 평등주의 내지 평준화 정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이러한 유혹이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의나 최근의 국내 정치 분위기에서 유추해 본다면 앞으로도 중국과 일본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에 집중하는 동안 우리는 성장이냐 분배냐, 효율이냐 형평이냐 등 이념을 둘러싼 논쟁에 많은 시간을 보낼 위험이 있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이념보다 실용을 앞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다. 사실 실용이라는 것이 반드시 이념과 대치되는 개념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개혁을 실용에 바탕을 두고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

먼저 새 제도로 혼란과 저항을 유발하기에 앞서 현행 제도 중에서도 개혁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길이 없는가를 검토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치만 내걸고 실행이 뒤따르지 못하는 개혁보다는 오히려 이런 방식이 훨씬 효과가 크다.

입법활동에 있어서도 논란이 많은 법안보다 합의 가능성이 큰 것부터 제정해 나가는 것이 실용적이다. 여당이 생각하고 있는 50여개 법안 중 한나라당이 찬성 또는 원칙적인 찬성의사를 표시한 법안이 38개 가까이 된다면 이런 법안부터 심의에 들어가는 것이 개혁의 실마리를 풀어가면서 동시에 정치안정과 경제회복에 도움을 주는 방안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대포장된 구호나 프로젝트를 남발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동북아 경제의 중심 국가' 운운하면서 인접국의 오해만 불러온 게 대표적 사례다. 처음부터 그냥 '동북아 비즈니스 센터'라는 목표를 걸었어야 했다.

노성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