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제 목소리 못내는 韓人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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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주고자 해도 누가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를 모르면 도와줄 수 없습니다. 저희를 믿고, 우리에게 얘기해 주십시오."

27일 저녁 런던의 킹스턴 한인교회에서 영국 경찰이 한인 동포들을 상대로 하소연을 했다. 한인들이 모여 사는 킹스턴의 시장도 협조를 당부했다. 예배당 한쪽엔 경찰서에서 마련한 한글 번역본 홍보 팸플릿과 범죄예방 안내서, 줄을 당기면 요란한 소리를 내는 호신용품까지 준비돼 있었다. 그런데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국인은 20여명에 불과했다. 런던 남쪽 킹스턴 인근에 사는 동포는 최소 3만5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서유럽에서 가장 큰 한인 공동체다. 따라서 한인 관련 사건.사고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인들이 범죄를 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인사회 담당 데이브 터틀 순경은 "범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신고를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첫째는 언어의 장벽, 둘째는 문화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년간 킹스턴 경찰은 한국인 경찰관을 채용하고자 각별히 노력했다. 한국 음식을 대접하는 설명회까지 연 덕분에 10여명이 지원했으나 대부분 자격.실력 미달이었다. 아무도 채용하지 못한 것이다.

설명회에 참석한 한인들은 인종차별이란 또 하나의 장벽이 있다고 주장했다. 비교적 점잖다는 영국에도 인종차별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한인 사회가 규모에 맞는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영국 경찰의 지적은 타당했다. 영국의 한인 사회는 최근 몇년간 급성장한 덩치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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