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 기자의 ‘경제로 본 세상’] 9월 위기설과 로또 명당의 공통점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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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9월 위기설이 난무하면서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위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경제는 위기를 맞게 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자 “언론에서 위기라는 용어를 쓰지 않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많아지고 있다. 컵에 물이 절반 정도 있으면 “반밖에 안 찼다”라고 표현하지 말고 “반이나 찼다”는 식으로 언급해 달라는 얘기다. 그러나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이 말은 다소 생뚱맞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심리라는 용어가 없어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의 경제행위는 심리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길을 가다가 돈 1만원을 주웠다고 하자. 이때의 공돈 1만원과 자녀들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용돈 하라며 부모에게 준 1만원의 ‘값어치’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경제학 이론대로라면 어떻게 생긴 1만원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또 경제학에서는 ‘묻지마 투자’란 없다. 투자할 때 향후 수익률이 얼마나 될지를 곰곰이 따지는 게 경제학이 얘기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선 묻지마 투자를 하는 사람이 참 많다. 어디 투자뿐인가. 길이 꽉 막혀 있을 때 차량 몇 대가 옆길로 새면 왜 그런지를 모르면서도 운전자들은 줄줄이 따라가지 않는가. 백화점이나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긴 행렬이 보이면 대체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줄부터 서지 않는가.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활용해 장사하는 기업도 많다. 가령 ‘로또 복권 또 당첨’이란 광고를 하는 복권 판매점들이 있다. 이른바 ‘명당’ 가게에서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명당이란 없다. 복권 당첨번호는 무작위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가게에서 판 복권 중에 1등 당첨자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운수소관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가게는 ‘1등 복권 당첨’이란 광고를 한다. 그러면 또다시 1등짜리 복권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왜냐하면 광고를 보고서 복권을 사러 오는 사람이 이전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복권을 많이 판 가게가 그렇지 않은 가게보다 1등 당첨 복권이 나올 확률이 높은 건 당연하지 않은가. 역으로 말하면 이 가게는 ‘꽝’인 복권도 다른 가게보다 훨씬 많이 팔았다.

위기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냉정해야 한다. 묻지마 투자를 한 사람일수록, 명당 자리에서 복권을 산 사람일수록 큰 돈을 벌었다는 사람은 아직 못 봤다. 오히려 큰 낭패를 겪었다는 사람은 참 많이 봤지만.

또 위기일수록 정부는 국민과의 대화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무조건 안심하라는 식의 일방통행적 대화가 아니라 사람들이 제대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대로 공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줄부터 서는 건 ‘왜 줄을 서는지’에 대해 전혀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경제는 심리가 아니라 정보라는 걸 이 정부가 진작부터 깨달았다면 이 같은 소동은 없었을 게다.

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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