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가정폭력 추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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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개봉된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는 흥행에 성공했다.
관객은 주로 여성,특히 중년주부들이 많았다.줄거리는 단순하다.
아파트 주부들이 어느날 한 집에서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는 현장을 목격하고,이를 말리다 남자를 때려 숨지게 한다 .주부들은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경찰과 대치하면서 사회를 향해 자신들의 한(恨)을 퍼붓는다.영화를 본 한 40대 주부는 『남성위주의 사회에 할 말을 한 것 같아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이었다.
「매맞는 아내」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지난 93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7천5백명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1%가 남편으로부터 구타당한 경험이 있으며,그중 15%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만큼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한 국여성의 전화」가 지난해 7~12월 상담자 4백87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따르면 구타가 시작되는 시기는 결혼뒤 3개월이내가 43.1%,4개월~1년이 17.3%며,절반이상이 한달에 한번이상 주기적으로 구타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구타당한 경우가 73.4%에 달한다.
아내구타는 외국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다.지난 92년 미국 의학협회보고서엔 미국 여성의 25%가 현남편 또는 전남편으로부터구타당하고 있다.독일의 경우 남편으로부터 구타당한 경험이 있는여성이 전체 기혼여성의 48%를 차지한다.교육 정도.경제수준의높고 낮음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가정폭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직도 「집안문제」수준이다.대책도 별로 없다.보호시설이라고 해야 여성및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10여개가 고작이다.미국은 부인보호명령제와 「피난처」 지원을 내용으로 한 가정폭력방지법을 시행하고 있다.영 국에선 남편의 구타로 아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남편을 집에서 추방할 수 있다.프랑스는 폭력을 휘두른 남편에게 징역 2년.20만프랑까지 벌금을 물리고 있다.
정부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정폭력방지대책을 마련했다.가족및 아동 관련단체를 연결한 핫라인 구축,112신고전화 활성화,피해자 임시보호시설 수용 등 행정처분,그리고 이를 위반했을 때형사고발할 수 있는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이 그 내 용이다.늦게나마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사회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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