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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그릇된 문화정책이 만든 가짜 銃筒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건 해도 너무 한 일이다.『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이 더이상 실감날 수 없다.어느 영화에선가 비슷한 이야기를 본 것 같지만,지금쯤이면 어느 외국에선가는 해외토픽난에나 실렸을 성싶은이 가짜국보 기사를 접하고 많은 이들이 실소를 금치 못하리라.
있을 수도 있는 일로 치기에는 너무나 창피한 국가적 망신이다.
서로 짜고 가짜를 진짜인양 만드는 것까지야 몇몇의 양심문제라고치자.그러나 그런 가짜가 국가의 최고권위자들에 의해 버젓이 국보로 지정됨에야 기가 막혀 할 말 이 없어진다.
이 「가짜 거북선 총통」사건이야말로 문화국가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준다.이 사건을 단지 실적올리기에 급급한 어느 군인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임진강 폐수오염사건을 보고 몇몇 악덕기업만을 탓하는 일과 진배 없는 국가기관의 직무유기적 자기변명일 뿐이다.지난 몇년 동안 이 나라의 문화정책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이런 희대의 사건이 일어난 것도 어쩌면 놀라운 일이 아니리라.백성들의 맹목적 애국주의와 감상적 민족주의나 부추겨 그저 정치적 인기나 유지하려는 이들이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멋대로 결정하는 사회에서야 가짜가 국보로 둔갑하는 게 그 무슨 대수랴.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이 가짜가 국보로 지정될 무렵 세간에는 이런저런 말들이 떠돌고 있었다.아무리 보아도 이런 물건이 진짜일리 없다는 일부 인사들의 신중론은 이 물건을 국보로 지정하는데 앞장선 이들에 의해 무시됐다.이 가짜는 발굴사실이 발표된 후 불과 3일만에 국보로 지정됐다.그후 성분분석 결과 동시대 동일종류의 유물과는 크게 다른 물질로 만들어졌음이 밝혀졌지만 유야무야됐다.이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데 앞장선 이들은 당연히 국가적 망신 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거북선 총통」만이 문제가 아니다.지난 몇해 동안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 중에는 진품이라고 보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것이 많다는 얘기가 있음을 알만한 이들은 다 안다.가짜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던 문화재위원이 그만두자 마자 국보로 지정된 도자기가 있는가 하면 뒤에서 가짜인 것 같다는 수군거림이 오가는 서화가 지정된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당시 문화재 지정을 둘러싼 잡음이 가시지 않자 고(故) 삼불(三佛) 김원룡(金元龍)선생을 비롯한 여러분이 국보지 정만큼은 문화재위원회의 관계분과합동회의를 열어 신중히 처리하자고 제의했으나 누군가에 의해 묵살되고 말았다.
차제에 이런저런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고 그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 것은 말할나위 없이 국가가 져야할 최소한의 책임이다.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책임이 있다.그것은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의 척박한 문화환경을 불식하는 일 이다.월드컵도 좋지만 이제 이런 류의 창피한 서울발 해외토픽이 더이상 발생해서는 안되겠다.
이선복 교수서울대.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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