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인도적 식량지원은 우리가 짊어진 의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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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대북(對北) 식량지원에 동참해 달라는 세계식량계획(WFP)의 요청을 수락할지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한다. 안하무인 격으로 한국을 대하고 있는 북한에 뭘 준다는 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금강산 주부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특히 검증문제에 불만이 있다고 합의된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중지해버렸다. 정부의 고심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좀 더 본질적인 차원의 남북관계에서 보면 WFP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 옳다. 우선 북녘동포들이 단지 거기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만성적 식량난으로 민족적 차원의 비극적 상황이 닥쳐오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한 청년의 평균 키가 15㎝ 차이가 난 것이 단적인 예다. 앞으로도 방치하면 인종 자체가 달라질 정도로 체형 차이가 날 수도 있다고 한다. 정말 참담한 상황이다. 이를 방관한다면 그 책임은 평양 지도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에게도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인도적 차원에서의 식량지원만큼은 중단돼선 안 된다. 특히 WFP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 지원은 ‘북한이 직접 지원을 거부할 경우 이런 식으로 한다’는 정부의 원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첩경은 신뢰의 공유다. 이는 양측이 서로에게 일관된 신호를 줄 때 가능하다. 정부는 ‘인도적 차원의 지원에는 조건이 없으나 북핵이나 금강산 사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점을 북측에 납득시켜야 한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탈북자 여간첩 사건도 북한에 항의하는 등 우리의 단호한 입장을 보여주어야 한다.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한 합의를 깨거나 몽니를 부리면 남북경협은 물 건너간다는 점도 주지시켜야 한다. 북한도 통미봉남(通美封南)이니 하는 시대착오적 전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도 물심양면으로 북한을 지원하려고 하는 국가는 한국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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