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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칼럼>소비자에겐 믿을 '분'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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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 고속버스 회사의 신임(新任) L사장이 자기 회사 경부(京釜)간 버스의 차내 서비스를 몇 가지 개선하라고 지시했다.비용은 들겠지만 빈 자리가 많은 요즈음 손님을 더 끌면 회사 수입이 그 이상으로 올라간다는 계산 때문이었다.이 이 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효과가 어땠는지 성급하게 질문했다.
『허어,실시도 못해본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이 노선에 우리 말고 아홉개 회사가 더 뛰고 있는데 매표 수입은 각사의 승객수가 아니라 운행횟수에 따라 배분된다는 거예요.돈을 들여 서비스를 개선해 우리 회사 버스에 승객을 더 태우면,빈 차라도 좋다고 그저 운행횟수만 채운 다른 회사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이 제 지시를 듣고 난 담당 중역의 말이었습니다.』 L사장의 대답이었다.운행횟수 기준 매표수입 배분은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영업하는 고속버스회사 사이의 서비스질(質) 경쟁을 봉쇄하는 절묘한담합행위다.
우리나라 산업은 많은 부문에서 총칭적으로 말해 「협회 카르텔담합」을 자행(恣行)하고 있다.기업들은 무슨 무슨 조합이니,무슨 무슨 협회니 하는 카르텔을 공공연하게 결성해 놓았다.역겹게도 거기에 「자율 규제」라는 먼 거리에 있는 미 명(美名)을 갖다 붙인다.경쟁에는 노력과 돈이 든다.소비자라는 존재만 없다면 담합처럼 이롭고 미끈한 장사방법은 없다.역으로 담합행위는 안중(眼中)에 소비자가 없는 장사방법이다.담합행위는 절묘하면 할수록 소비자에게는 그만큼 악질적 배 신이다.
이런 못된 짓을 못하게 하려고 나라에는 공정거래법이 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있다.공정거래라는 것은 처음도 끝도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공정거래란 철저한 경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기업들이 경쟁하면 그 이익은 「만국(萬國)의 소비자」에 게 돌아간다.그리고 기업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생기는 지혜와 근육을 대상(大賞)으로 받게 된다.불공정경쟁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거기에는 현재나 미래의 어느 시점에 경쟁을 제한하려는 음모가 개재돼 있기 때문이다.음험한 독점 음모 말이다.
지난 5월 하순,전경련(全經聯)이 연 30대그룹 「공정거래제도 개편방향」간담회는 기업들이 관련 협회나 단체의 「자율규제」를 통한 신규진입이나 투자를 제한하는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공정거래법 19조 경쟁제 한행위로 보아 이를 무효화하겠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방침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석유화학.제철 등의 투자조정과 반도체.자동차.조선업계의 부당 스카우트 방지 규약이 무너지고,업종별 협의회의 존립 기반을 잃게 되어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위협 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경련이 자유로운 경쟁적 시장경제의 수호자가 아니라 새로운경쟁자의 등장이나 기존 경쟁자의 공급능력 확대를 훼방하는데 더급급한 담합기구라는 신분증이 확인된 좋은 케이스다.진정으로 자유로운 노동의 이동이 보장돼야 생산 요소의 최적 배정이 실현되며 소비자는 좋은 품질을 값싸게 살 수 있다.근로자의 후생도 향상된다.전경련은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스카우트 방지를적극 옹호함으로써 소비자와 근로자라는 두 차원에서 국민을 핍박하는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회사 가 근로자에게 투자한 회사 자산으로서의 기술이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일반적 스카우트방지 담합이 아니라 개별적 근로계약에 의존하면 될 것이다.
어디 기업 뿐인가.공정거래위원회조차 대기업의 「경제력집중 해소」라는 또 다른 미명을 걸고 정부에로의 「경제력집중」이 그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30대 기업 은행소유 불허」니 「계열사 빚보증 규제」를 신검(神劍)처럼 뽑아 들고 는 언제든지내려칠 자세를 취하고 있다.
공노대(公勞代)소속 한국통신 노조.서울지하철공사 노조는 파업을 무기삼아 통신사업의 민영화,지하철공사의 분할에 의한 효율화를 반대하고 있다.노동조합은 소비자 쪽에서 보면 생산자이고 독점자다.한의사와 약사의 이다지도 오래 끄는 분쟁도 안중에 소비자가 없는 소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소리 없이 있는 소비자는 시세에 달통하고 있다.글로벌화라는 것은 만국의 소비자가 약아질대로 약아져 있음을 의미한다.그리고 소비자야 말로 소비행동의 변화를 무기로 삼는 가장 잔인하고 효과적인 혁명적 테러리 스트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소비자를 홀대하거나 무시하는 어떤 조직도 소비자와 직접 맞부닥치게 되는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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