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철퇴맞은 공영방송의 오만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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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KBS와 MBC가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보도가 결과적으로 시청자에게 혼란을 줬다는 이유에서다. 심의위는 선거방송시스템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도 함께 요구했다.

우리는 두 방송사의 예측보도 문제를 바로잡으려면 시스템의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본다. 원내 제1당을 틀리게 예측한 제16대 총선 개표방송도 심의위로부터 '시청자에 대한 사과'라는 철퇴를 맞았다. 이후 지상파 방송 3사는 여론조사 기관들과 정확도를 높이는 방안을 강구했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잘못이 되풀이되는 근본 원인은 두 공영방송의 오만함에 있다. 우리는 방송 종사자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같은 실수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심의위가 일찍이 MBC 'PD수첩-친일파는 살아있다 2'에 '경고'를 내려 제작진의 주의를 일깨웠을 때 겸손하게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삼았다면 사려 깊은 개표방송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박빙 지역이 많아 예측이 힘든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방송 초기부터 당선 확실을 내세워 결과적으로 당락이 뒤바뀐 입후보자들을 앞다퉈 줄줄이 인터뷰로 내보내 혼란을 초래했다. 오만함과 자만심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두 공영방송이 누리고 있는 거대한 영향력의 원천은 국민이다. 편성의 자율권은 방송 종사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국민의 곁에 다가서기 위해 몸을 낮추는 마음가짐만이 잘못을 발견하고 뿌리부터 치료할 수 있게 한다. 심의위가 다음날 사과방송을 한 SBS에 가벼운 '경고'를 내린 뜻을 두 공영방송은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