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반대해도 내가 옳다 생각하면 사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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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정치권의 단골 뉴스 메이커는 한나라당 홍준표(54) 원내대표였다. 내로라하는 여권 실세들이 말수를 줄이면서 홍 대표의 존재감은 두드러졌다. 촛불정국 여파로 국정에 공백이 생겼던 시기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여권의 기류를 예고하는 방향타로 인식됐다. 그렇게 치솟던 그의 주가는 7월 31일을 기점으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청와대의 장관 인사청문회 반대로 그가 주도한 원구성 합의가 무산되면서다. “야당에 너무 많이 양보한다”는 당내 비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172석 한나라당의 원내 사령탑이다. 정기국회는 올가을에도 그를 뉴스 메이커로 붙잡아둘 것이다. 27일 국회 본청 원내대표실에서 그를 만났다. 청와대 얘기부터 꺼냈다.

-7월 31일은 아쉬웠겠다.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는 청와대가 당사자라서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려 했는데 청와대는 법적으로 이미 끝난 일이라고 했다. 결국 내 책임이다.”

-청와대가 홍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있다.
“(갑자기 목소리에 힘을 주며) 나는 옳다고 생각하면 자리를 걸고 청와대를 설득할 자신이 있다.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도 청와대 반대를 무릅쓰고 내가 사인을 했다. 이 대통령 일부 측근들이 ‘홍준표가 자기 정치를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국민만 보고 가는 게 정치인의 도리다. 앞으로도 청와대가 잘못하면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감시통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홍 대표는 촛불정국 당시 여당 원내대표이면서도 이명박 정부를 향해 잇따라 쓴소리를 던져 주목을 끌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낮은 자세로 바뀌었다. 주위의 견제가 못내 신경쓰였던 것일까. 아니면 청와대에 순치돼 가는 과정이었을까. 속내가 궁금했다.

-최근 한 달간 청와대와 여권에서는 점수를 좀 땄겠지만 그만큼 실망감도 커졌다는 지적이 있다.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청와대가 힘을 실어준다고 여당 원내대표의 힘이 강해지는 건 결코 아니다. 또 청와대가 견제한다고 힘이 빠지는 것도 아니다. 여당 원내대표는 당헌상의 권한이 있다. 그대로 하면 된다. 나는 검사 4년차 때도 검찰총장과 부딪쳐 이겼고 1993년 슬롯머신 수사 때도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앞으로도 할 말은 다 하고 살 것이다.”

-한나라당이 다시 거수기 여당으로 돌아갈 거란 우려가 많은데.
“최근 수돗물 대책에 대해서도 당은 분명한 선을 그었다. 정부가 정책을 잘못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당이 진다. 선거에서 지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5년 단임정부지만 정치적 부담은 한나라당이 져야 한다. 잘못하는 각료는 정식 절차 전에라도 반드시 대통령에게 해임을 요구할 생각이다. 대통령도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많은 걸 깨달았을 것이다.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게 입증되지 않았나.”

-대통령과 통화는 자주 하나.
“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자주 통화하면 안 되는 자리로 알고 있다. 정무수석이 아니잖은가. 청와대에서도 거의 전화 안 한다.”

-올림픽 바람까진 잘 탔는데 지금의 내각과 청와대 진용으로 과연 잘해 나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높다.
“연말에는 대통령께서 향후 4년에 대한 구상을 새롭게 하실 것으로 본다. 그에 맞는 인재 재배치가 있을 것이다.”

-연말 전면개각이나 청와대 개편이 불가피할 거란 얘긴가.
“(끄덕끄덕).”
그는 고개를 굽힌 게 아니라고 했다. 아직 기가 살아있는 듯했다. 질문의 초점을 그 자신에게로 돌렸다.
 
좌충우돌? 일관되게 살았을 뿐!


-원내대표는 왜 하고자 했나.
“하려고 해서 된 게 아니고 어부지리를 얻었다. 공천 과정에서 친이·친박계가 자기들끼리 충돌하면서 갑자기 내 앞에 있던 선배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원내대표는 의회정치의 꽃이다. 모든 의원이 한번은 해보고 싶어 하는 자리다. 나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우연히 기회가 왔다.”

-원내대표가 되면 꼭 하고 싶었던 게 뭔가.
“여야 몸싸움이나 단상 점거가 없는 합리적 국회를 만들고 싶다. 이는 여당이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국정 파트너로 삼을 때만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게 내 신념이다. 사실 내가 원내대표가 됐을 때 한나라당 지지층은 내가 강하게 밀고 나갈 것으로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내가 주전파에서 주화파로 바뀌었으니 실망감이 컸을 것이다. 여당 원내대표는 욕을 안 먹을 수 없는 자리다. 욕을 최소한으로 먹는 게 목표다.”

-왜 생각이 바뀌었나.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다. 지금은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10년 안에 선진국 진입을 못하면 급격히 노령사회로 들어가 성장동력을 잃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성공해야 한국의 보수가 설 자리가 생기고 재집권할 기회도 생긴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와 형님동생 하는데.
“96년 정계 입문하기 전날 밤 꼬마 민주당분들이 제 집에 찾아와 입당을 설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원 대표, 유인태·이철 전 의원 등이다. 이후 국회에서 만나 호형호제하며 잘 지내고 있다. 참 합리적이고…, 유하다고들 하는데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시다.”

-한나라당팀 감독으로 선수들을 평가한다면.
“여당이기 때문에 공격력보다는 방어력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한데…. 요즘 초선의원들 보면 야당보다 공격력이 뛰어난 분이 많다. 정기국회 때 행정부가 꽤 힘들 거다(웃음).”

-상대팀도 평가해 달라.
“이념 과잉을 주도했던 386들이 많이 탈락한 뒤 지금 민주당의 인적 구성은 참 잘 돼 있다고 본다. 이번 국회에 기대가 많다. 야당 주요 당직자들에게 농담 삼아 이런 말도 한다. 내가 원내대표 하는 게 당신들에게도 좋을 거다. 내가 그만두면 누가 와도 청와대 요구에 못 이겨 당신들과 협상할 여지가 없을 거라고.”

-주류가 아닌 이상 홍 대표의 정치행보도 결국엔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거란 냉소적 시각도 존재한다.
“친이 측에서 원내대표를 맡았으면 정부에 맹종하는 스타일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고 친박 측에서 됐다면 사사건건 정부와 충돌했을 것이다. 나 같은 중립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된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할 거다.”

-신주류가 된 것 아닌가.
“이제 비주류는 아니죠(웃음). 검사 때도, 정치인 때도 늘 비주류만 했는데…. 정치입문하고 정상적인 당직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홍 대표가 하는 말은 다 맞는데 듣는 사람 참 거북하게 한다”며 “한나라당의 유시민 같다”고 평했다. 적을 너무 많이 만든다, 안정감이 없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는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저보고 좌충우돌한다는데, 공직생활 26년을 일관되게 살았다. 옳다고 생각하면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떤 때는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각을 세웠다. 나는 바뀐 게 없다. 상대가 누구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줘야 한다.”
 
가난한 자도 기회 갖는 세상 꿈꿔

-가족들이 정치하는 것 반대 안 하나.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두 아들은 어릴 때부터 존경하는 인물을 쓰라면 홍준표를 쓴다. 참 고맙다. 난 이걸로 인생에서 성공했다고 본다. 내 출발의 밑바닥이 튼튼하니까 밖에 나가서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없다. 두 아들과의 약속은 지금까지 어떤 이유에서든 어긴 적이 없다. 집사람과의 약속은 가끔 어기지만(웃음).”

-서울시장 하고 싶나.
“후배가 연임하겠다는데 생각 없다. 오세훈 시장이 잘하고 있지 않나.”

-정치인으로서 어디를 보고 가나. 그 끝은 뭔가.
“(잠시 고개를 돌리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기회가 오면… 국가경영을 한번 해보고 싶다.”

-언제쯤 기회가 올 것 같나.
“알 수 없다. 천운이 따라줘야 한다, 허허허. 다음이 아니면 그 다음도 있지 않겠나. 내 나라가 선진국이 되고, 가진 자들이 좀 더 양보하며, 가난한 사람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이 세 가지가 내가 꿈꿔 온 세상이다.”

-서울시장 경선도, 대선후보 경선도 떨어졌는데 선거에 약한 것 아니냐.
“당내 선거는 좀 약하지만 국민을 상대로 한 선거는 떨어져본 적이 없다. 탄핵 때도 서울 강북에서 유일하게 당선됐다. 당 선거는 조직이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는 당내 선거에서도 약하지 않도록 나도 조직 좀 하겠다(웃음).”

그도 꿈을 꾸고 있었다. 소신 있는 행보는 꿈꾸는 자의 특권이다. 홍대표의 웃음에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문제는 현실이다. 청와대가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통해 정국의 주도권을 다시 쥐고자 하는 상황에서 여당 원내대표로서 청와대에 직언과 쓴소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냐다. ‘할 말은 한다’는 홍준표식 정치가 어떻게 진화해 갈지 지켜볼 일이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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