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불능화 8가지 조치 끝나, 현재론 되돌리기 어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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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12면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북한의 조치가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될 것이냐는 점이다. 북한이 플루토늄을 다시 재처리한다고 나오면 어쩌나.
“영변엔 세 개의 주요 핵시설이 있다. 5MW 원자로, 방사화학실험실로 불리는 재처리시설, 그리고 핵 연료봉 제조시설이다. 3개 시설에 11개 조치를 취한 것이 불능화다. 현 단계에는 8개 조치가 끝나 있다. 남은 3개 조치는 ‘사용후 연료봉 인출’ ‘제어봉 구동장치 제거’ ‘미사용 연료봉 처리’인데 지금 북한은 이 중 ‘사용후 연료봉 인출’을 중단시켰다. 걱정 대상인 방사화학실험실에 대한 불능화 조치는 끝나 있다. 불능화는 장비 안의 배관이나 파이프 또는 구조물, 기계를 절단하고 제거해 사용을 못하게 한 걸로 이해하면 된다.”

다시 출렁이는 북핵,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에게 들었다

-재처리 시도를 못한다는 건가.
“재처리를 가상하는 것은 극단적이다. 재처리를 하려면 북이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아야 한다. 북은 불능화 1, 2단계를 거치면서 많은 혜택을 받았다. 재처리는 이를 되돌리고 많은 것을 잃는다는 걸 뜻한다. 북한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진 않을 거라고 본다. ”

-하려 든다면 어떨까. 시간적으로 얼마나 걸리겠나.
“외부 세계와 모든 걸 단절하고, 6자회담을 완전히 파괴하고 국제 사회와 전면으로 맞선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각오하면 기술적으로는 1년, 1년 반이면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이 불능화를 원상회복 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다는 뜻이다.”

-2차 핵실험에 대한 추측도 나온다.
“추가 핵실험은 아주 극단적인 조치다. 말처럼 쉽게 될 일이 아니다. 검증 의정서를 얘기하다 추가 핵실험을 얘기하는 건 새총을 쐈는데 3차 대전을 말하는 것과 같다. 핵실험으로 치달으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연거푸 계속되어야 한다.”

-실험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2차 실험은 참을 수 없다. 종교 성인이 아닌 한 인내에는 한계가 있다. 인내는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밖으로 나가면 인내는 없다. 2차 실험은 그런 것이다.”

-북한은 아직 3개의 불능화 조치를 카드로 갖고 있다. 이를 들고 또 협박할 수 있지 않나. 그럴 때 우리의 대응 기조는 무엇인가.
“북한이 그렇게 나올 수도 있다. 우리의 대응 기조는 ‘북핵 불용’이다. 미국을 포함해 국내 일부에선 ‘외부로 핵이 이전·확산되지 않으면 타협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는데 절대 아니다. 이를 대화와 외교로 해결하자는 것이 6자회담이다. 경색 국면에도 대화와 협상으로 이끌어가자는 것이다.”

-북한의 중단 조치 배경에 대해 정부는 ‘테러지원국 명단이 해제되지 않은 데 대한 불만, 검증 의정서 교섭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는 인위적 긴장 조성’을 꼽고 있다. 그런데 올해 7월의 6자회담 언론 발표문에 나온 검증 합의에는 미국이 요구하는 시료채취, 불시사찰, 미신고시설 사찰 같은 ‘특별사찰’ 형태의 검증은 없다. 합의서에 없는 내용을 미국이 강압해 상황을 꼬이게 한 것은 아닌가.

“특별사찰이란 용어는 조심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의미하는 용어가 합의서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이 신고한 내용이 정확하고 완전하려면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한다. 용어가 무엇이든 신고된 내용이 정확한지를 검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완전한 핵 투명화, 비핵화가 말에 그칠 수밖에 없다.”

-합의서에 그런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래서 합의서가 원래부터 모호했다는 지적이 있다.
“문장이나 언어가 100% 커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0.1% 미진함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문건이 미진하거나 해석에 차이가 있으면 취지와 정신으로 해결해야 한다. 신고했으니 의무를 다 했다고 하면 신고서를 어떻게 검증하고 판단하나. 계산하고 검산하듯, 사업을 하고 감사하듯 검증도 당연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북한에 이런 얘기를 해 왔다.”

-그러나 특별사찰 같은 요구는 북이 거부할 게 뻔해 보인다.
“예기치 못한 긴장이 유발됐지만 우리는 북한이 통보해 왔을 때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위기는 아니라고 봤다. 과잉 반응을 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하자고 했다. 아직 협상도 진행 중이고. 타협점이 찾아질 수 있다.”

-타협 포인트는 ‘시료 채취’에 있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가장 중요하다. 핵 검증이나 핵 사찰에도 ‘포렌직(법의학)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CSI와 같은 드라마에서 포렌직이 쓰이지만 근본은 과학적 조사다. 포렌직을 하면 주요 핵 활동이 있던 곳이 드러나고 과거 핵 활동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나타난다.”

-북한에는 모두 다 벗으라는 요구인데 수용하겠나.
“시료 채취 같은 검증의 기본 원칙을 부정할수록 숨기는 게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된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는데 북한이 받아들일 리 없어 보인다.
“검증 의정서만 만들어지면 당장 테러지원국 해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미국이 제안하는 ‘의정서 합의’와 ‘검증 확인을 위한 방문단의 현지 방문’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격차가 있다. 검증단이 북에 들어가야 테러지원국 해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합의서만 체결돼도 테러지원국 해제가 가능하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先 서면 합의 後 현지 검증’이다. ”

-미국이 북한에 이 안을 제시했나.
“북한도 이를 이해하고 있다. 북한은 이 제안을 외무성 발표 형식으로 거부했다. 그렇다고 교섭의 종료냐, 그건 아니라고 본다. 미·북 협의가 진행 중이고 나머지 국가들도 합의점 찾기에 기여할 것이다.”

-한·미는 북한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왜 양국은 대응을 자제하나. 에너지 지원도 예정대로 한다. 끌려 다니는 것 아닌가.
“잘못에 과잉 반응하지 않는 것을 끌려다닌다고 하는 것은 자학적이다. 잘못을 교정하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처벌하는 것은 6자회담 취지에 비추어도 바람직하지 않다. ”

-우리 정부는 ‘상호주의’를 주장한다. 벌을 주거나 제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벌은 조심스럽게 이해되어야 한다. 북의 입장을 무한 수용할 순 없지만 북의 독특한 형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는 위기 국면도 아니고 6자회담이 막다른 골목에 간 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2단계도 어렵지만 3단계, 핵포기 단계는 더 어렵고 여러 난관과 위기가 닥칠 거다. 지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 중에 인내심이 필요할 때다.”

-중국의 역할이 기대된다.
“중국의 중요성을 우리는 비중 있게 평가한다. 가끔 생기는 경색 국면에서 중국이 그동안 보여줬던 역할을 다시 기대해볼 수 있다. 조만간 우리도 중국과 협의에 나설 것이다.”

-좀 구체적으로는.
“검증 의정서에 미국과 북한이 절충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지 않겠나.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는지 말할 수 없다. 크게 봐서 설득과 타협을 이뤄가는 과정이다. ”

-북한의 중단 통보를 받고 12일이나 침묵했다. 국민을 무시한 것은 아닌가.
“북한이 사용후 연료봉 인출작업을 중단하고 이를 미국에 알렸고 한국도 즉시 알게 됐다. 이 조치가 바람직하지 않고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북한이 나서서 발표하지 않는데 먼저 나설 필요는 없다고 우리는 판단했다. 국민이 알아야 할 긴급 사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국민의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모든 게 실시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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