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蹴鞠-삼국시대부터 성행한 공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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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우리나라 삼국시대때 성행했던 공차기에 蹴鞠(蹴)이라는 것이 있었다.일명 타구(打毬).농주(弄珠),또는 기구(氣毬)라고도 했는데 쇠가죽 속에 털이나 겨를 넣어 공처럼 만들어 찼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도 김유신(金庾信)이 젊었을 때 김춘추(金春秋)와 蹴鞠을 하다 그만 잘못해 그의 옷자락을 밟는 바람에 옷고름을 찢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중국 『구당서(舊唐書)』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蹴鞠에 뛰어났다고 기록돼 있다.이렇게 볼 때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공차기에 능했음을 알 수 있다.다만 조선시대에 오면 양반이 공을 찬다는 것은 경거망동(輕擧妄動)에 해당되었으므로 일부 젊은이나군대에서 연무(鍊武)의 방편으로 행해졌을 뿐이다.
근세에 들어와 공차기는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서 널리 행해졌다.지금처럼 공이 흔하지 않았으므로 그저 새끼줄을 둥글게 말아서차기도 했으며,소나 돼지의 「오줌통」에 바람을 불어넣어 차기도했다.그래서 혹 명절이 가까워 돼지라도 잡으면 동네 어린이들이몰려들곤 했다.개화(開化) 이후 서양식 공차기가 전래돼 축구(蹴球)라 불리게 되었다.불과 1백여년 전의 일이다.
이래저래 우리는 일찍부터 공차기에 능했고 또 즐긴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그래서인지 한국 축구는 이제 아시아 정상에 우뚝 섰다.게다가 2002년 월드컵 개최권(開催權)까지 따내 바야흐로 축구중흥(蹴球中興).국운융성(國運隆盛)의 계기(契機)가도래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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