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돈 먹는 하마' 지구당 부활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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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정치권에서 지구당 폐지 방침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지구당 위원장은 물론 중앙당 차원에서도 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구당을 없애면 지역여론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기능마저 사라진다"는 주장들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에 미친 지구당의 폐해를 감안하면 우선은 폐지키로 한 새 법을 지키는 것이 먼저다. 그동안 지구당은 '돈 먹는 하마'였던 것이 현실이다. 현역 의원이나 유력 정당의 지구당 위원장이 매달 막대한 돈을 지구당 유지비로 써온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돈을 만들기 위해 검은돈도 마다하지 않게 됐고, 이는 정치권 부패.비리의 원인이 됐다.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고 자조했던 이유도 지구당 탓이 크다. 선거철만 되면 돈선거.조직선거가 판치는 것도 평소 비대한 지구당 조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야가 합의로 정당법 등을 고쳐 지구당을 없앤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지역구민 접촉과 민원수렴 기능은 상당 부분을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신 국회의원들은 지방자치 기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면 된다. 그것이 지방자치 정신에도 맞다. 국회의원들은 그동안 법안 처리 과정에서 국가운영의 큰틀을 생각하기보다 지역구의 이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구당 폐지를 계기로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 역할에 비중을 두는 게 바람직하다.

선관위에 따르면 지구당 폐지 이후 개인사무실이나 연구소 간판을 건 음성적 지구당이 계속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유사 지구당들은 특정인의 선거운동에 활용되거나 홍보 조직화할 것이 분명하다. 지역여론 수렴과도 상관없는 불공정 행위다.

17대 총선은 그 전의 선거들과 달리 깨끗하게 치러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름만 바꿔 단 유사지구당이 나타나면 우리 정치시계는 거꾸로 돌게 된다. '돈 안 쓰는 정치'도 물거품이 된다. 철저한 단속으로 초반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