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쿨한 남자 어디 없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 홍성화 43.주부통신원

프리랜서로 문구 디자인 일을 하다보니 남성들을 만날 때가 많다. 얼마 전 한 중소기업 대표와 업무 미팅을 끝내고 함께 점심 식사를 하게됐다. 억눌렀던 궁금증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대표가 물어왔다.

"미혼이신가? 기혼이신가? 미혼이라면 결혼할 시기가 지난 것 같고 …."

"…. 호호호, 대표님. 이 집 밥 냄새가 정말 특이하네요. 혹시 쌀을 특수 향처리했나?"

나의 엇나가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그 대표는 담배를 꺼내 물며 또 한마디를 한다.

"아 참, 담배 피우셔도 되는데. 여성이 술.담배한다고 이상하게 보면 현대 남성 아니죠."

"대표님! 요즘같은 웰빙시대에 술.담배를 권하면 아날로그 시대 사람 취급받아요. 그리고 여자는 남자 허락받고 술.담배해야 하나요?"

처음 몇년 간은 술.담배를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 다음 말은 뻔했다. '괜히 체면 차리지 말라'든가 '뭔가 하는 사람들은 술.담배가 기본 아니냐' 등등이었다.

업무 미팅을 통해 커피라도 편하게 마실 정도가 되면 던지는 질문은 또 있다. 나 역시 정답을 정해 놓았다.

"바깥 양반은 뭘 하시나요?" "열심히 일하는 대한민국 신체 건강한 최고 남성이죠."

"집안일은 어떻게? 이렇게 일만 해도 이해해 주시나 봐요." "홈 오토 시스템 모르세요? 우리 가족은 디지털 세대거든요. 어휴, 대표님 일하기도 힘들텐데 제 걱정까지…."

"여하튼 바깥분이 엄청 아량이 넓으신가 봅니다. 허허허."

아! 정말 쿨 ~ 하게, 하지만 뜨겁게 일만 하고 싶은데 ….

그런 날 저녁이면 내 남편은 수시로 식탁 밑으로 숨는다. 왜냐고? 대한민국 남성들을 탄핵(?)하는 나의 격앙된 목소리와 함께 튀어 나오는 바위만한 음식물 파편을 피하느라고.

홍성화 43.주부통신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