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본선 1국' 金4단,혁명을 꿈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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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본선 1국
[제5보 (85~103)]
白.金江根 4단 黑.曺薰鉉 9단

흑▲의 실수가 흑▲ 한점을 고립시켰다. 승리가 눈앞에 보이던 조훈현9단은 스스로 자초한 혼돈에 마음이 상한 듯 연신 탄식을 토해낸다. 참으로 曺9단처럼 격정적으로 대국하는 사람은 없다.

오랜 세월의 풍상과 쉰을 넘긴 나이에도 그의 격정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젊어서 강렬한 야성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서봉수9단은 근래 전의(戰意)를 접은 장수처럼 조용하다. 이에 비해 曺9단의 전의와 생명력은 지칠 줄 모른다.

85로 착 붙인다. 슬쩍 응수를 물었을 뿐인데 김강근4단은 이 한수에 내포된 온갖 노림에 속으로 혀를 내두른다. '참고도1'처럼 물러서면 보통이겠지만 흑2, 4, 6으로 돌파해오는 수가 걸린다. '참고도2'의 백1로 두는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수가 최선의 대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빈삼각의 형태가 싫고 귀살이가 남는 것도 싫다.

그래서 속시원히 86에 빠졌다. 깨끗하긴 하다. 하지만 87을 당하니 눈앞이 아찔하다. A로 막았다가는 흑이 90의 자리에 두어 안 된다. 결국 86은 실수였던가. 속살을 다 내주는 실속없는 수였던가.

이제 金4단은 조용히 혁명을 꿈꾼다. 형세는 막바지에 도달해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92, 94의 전투에 총력을 모으기 위해 88로 끼워 뒤를 강화했다. 이 수는 상당한 손해였건만 어차피 최후의 일전만 남았다는 생각에 무심히 손해수를 두고 있다. 96에서 흑은 드디어 양분됐다. 귀에서 큰 이득을 취한 曺9단은 백의 결사적인 예봉을 피해 바꿔치기로 나오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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