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 내 반한 감정 위험수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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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러나 양국 정부 간 관계의 진전과 달리 민간 차원의 감정 대립은 우려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24일 올림픽 폐막식을 지켜본 한국인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막식 행사 중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가 등장한 까닭이다. 중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진 것은 불문가지다.

더 심각한 건 중국 내 일고 있는 반한(反韓) 감정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개막식 선수단 입장 때 한국은 환대를 받지 못했다. 대만과 일본 선수단에 쏟아졌던 우렁찬 박수가 우리에겐 없었다. 공자의 3000제자로 나선 공연자들의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는 외침이 무색해진 것이다.

 양궁 결승전에서 중국 관중이 한국 선수가 시위를 당길 때 휘파람을 불며 경기를 방해한 것은 약과다. 한·일 야구 예선 때 일본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중국 관중을 보고 우리 국민들은 또다시 놀랐다. 한국이 언제부터 일본보다 얄미운 존재가 된 것일까. SBS가 방송사들 간의 약속을 깨고 올림픽 리허설 장면을 먼저 보도한 것이 반한 감정을 촉발시킨 측면은 있다. 그러나 중국의 반한 감정은 일회성이 아닌 누적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올 들어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보도들이 중국 언론과 인터넷을 장식했다. 묘한 건 이런 보도가 국내 주요 언론을 인용하는 형식을 띤다는 점이다. 지난 5월 한 중국 네티즌이 “올림픽 성화 서울 봉송 때의 폭력 시위로 조사를 받던 중국 학생이 10년 징역형에 처해졌다”는 글을 퍼뜨렸다. 중앙데일리를 인용했다고 했으나 날조였다. 7월 말엔 광둥성 신쾌보(新快報)가 조선일보를 인용해 보도한다면서 “성균관대 박분경 교수가 손문(孫文)이 한국 혈통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역시 날조였다. 8월엔 중국의 소후닷컴이 동아일보를 인용한다며 “서울대 박협풍 교수가 중국이 올림픽 개막식에서 보여준 나침반 등은 한국 발명품이라고 주장했다”는 글을 실어 중국인들을 격분시켰다. 박 교수는 가공의 인물이었고 이런 보도도 없었다.

 문제는 중국 내 일부 언론과 네티즌이 그릇된 정보로 우리나라를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허황된 보도가 중국에서 유행하는 것일까. 중국의 한국 전문가들은 2005년 우리나라가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록하면서 반한 감정이 치솟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한국이 중국의 전통유산을 강탈해 간다는 오해가 반한 감정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중국인들의 분노가 중국 당국에 의해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중국 당국은 양국민의 감정을 해치는 이런 그릇된 보도를 충분히 바로잡을 능력이 있다. 중국의 육상 기대주 류샹(劉翔)이 경기를 포기했을 때 중국 당국은 즉각적이고 철저한 댓글 관리를 통해 이 같은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한·중 양국은 어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에 따른 실행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양국 관계의 진정한 격상을 위해선 신뢰가 우선돼야 한다. 교류 증가에 따라 마찰이 느는 게 불가피한 상황에서 모든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는 없다. 신뢰가 있다면 어떤 분규라도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양국의 신뢰를 해치고 불신을 조장하는 일부 중국 언론 및 네티즌의 행태에 중국 당국의 책임 있는 조치가 절실한 시점이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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