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쟁력 없는 대학 문 닫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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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 대학입시가 다음달 8일 총정원의 54.5%를 뽑는 수시 2학기 모집 원서접수를 시작으로 본격화한다. 벌써부터 대학 간 신입생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학생 모집난에 허덕이는 지방대의 경우 ‘신입생 모시기’에 사활을 건 모습이다. 장학·연수 혜택 확대는 물론이고 대학 홈페이지 방문 수험생에게 디지털 카메라 등 선물 주기, 고3 교실 방문해 간식 제공하기 등 수험생 눈길을 잡으려는 갖가지 행보가 눈물겨울 정도다.

학교는 넘치고 학생은 모자라는 게 한국 대학교육의 현실이다. 입시 결과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2007학년도 대입에서 4년제 일반대(교대·산업대 포함) 216곳 중 정원을 다 채운 대학은 100곳(46.3%)에 불과하다. 20개 대가 정원을 10% 이상 채우지 못했다. 심지어 정원을 절반도 못 채운 대학도 5곳이나 된다. 이러고도 한국의 대학 운영 시스템이 정상 작동되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대학이 구걸하듯 신입생 모집에 급급한 상황인데 어떻게 대학 발전 노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래서는 대학교육의 경쟁력이 요원할 수밖에 없다.

대학 진학률이 82.8%(2007학년도)나 되는데도 이 모양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매긴 순위에 따르면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조사 대상 55개 국가 중 최상위 수준인 4위다. 그런데도 대학은 정원을 못 채워 난리다. 대학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 말고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대학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정원을 채우기 위해 학생부나 수능 성적만 있으면 미·적분 구경도 안 해본 학생을 이공계 신입생으로 뽑아주고, 동남아 출신 불법체류자마저 학생으로 받아주는 지경이 아닌가. 오죽하면 IMD가 한국의 대학교육 질을 꼴찌 수준인 53위로 매겼겠는가.

과도하게 높은 대학 진학률 자체도 문제다. 대졸 실업자를 양산하는 데 한몫하기 때문이다. 7월 현재 257만 명의 대졸자가 백수로 빈둥거리고 있지 않은가. 이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고 낭비다. 더 늦기 전에 대학 수와 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과거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시도는 구호만 요란하고 성과는 미흡했다. 무엇보다 경쟁력 없는 사립대학의 퇴출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6개 사학이 동일 법인 내 일반대와 전문대를 통합한 게 전부다.

이제부터라도 한계 사학의 퇴출을 활성화하는 법과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우선 학교 문을 닫겠다는 사립대 설립자에게 잔여재산의 일부를 돌려줌으로써 퇴출 경로를 열어줘야 한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 해산 때 잔여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거나 다른 학교재단에 소속시키도록 하고 있다. 이래서는 스스로 문을 닫겠다는 대학이 나올 리 만무하다. 사립대 인수합병(M&A) 활성화를 위해 한시적으로 학교재단의 매매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립대 간 통폐합을 통한 구조조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대학교육협의회, 사학진흥재단 합동으로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조직을 상설화할 필요도 있다. 사립대 재정 운영과 경영에 대한 컨설팅과 퇴출 지원을 위해서다. 교과부의 대학 재정지원 방식도 근본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 올해 136개 대학에 500억원을 차등 지급하는 것 같은 나눠먹기식 재정 지원으로는 한계 사립대학을 연명시켜 줄 뿐이다. 실적 평가를 바탕으로 한 선택과 집중 방식의 재정 지원으로 전환해 대학 같지 않은 대학은 스스로 문을 닫게 해야 한다.

경쟁력이 없는 한계 대학들을 끌어안고 가기엔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대학 운영 구조를 건강하게 만드는 노력을 게을리 하면 21세기 세계 경쟁에서 대한민국 자체가 도태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