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천년의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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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석가모니 입멸(入滅)후 약5백년간 불상(佛像)은 존재하지 않았다.부처는 보리수.법륜(法輪).연화(蓮花).금강좌 등 상징물로 표현됐다.당시 인도인들은 성스런 부처를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데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다.불교미술사에선 무(無)불상 표현시대라 부른다.
불상은 기원후 1세기인 쿠샨왕조시대에 등장한다.쿠샨왕조는 아프가니스탄 북부.서역(西域).인도 중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불교문화를 꽃피웠다.이 무렵 서북부 간다라와 중부 마투라에서거의 동시에 불상이 출현했다.간다라는 동.서문명 이 교차하는 십자로에 위치,불상양식도 그리스.로마의 영향을 받아 매우 사실적이다.이에 비해 마투라양식은 인도 고유의 미의식을 반영,양감(量感)이 풍부하며 내면적이다.인도 불상은 굽타왕조시대인 7세기중엽 간다라와 마투라양식이 서로 융 합돼 한 정형(定型)을 이뤘다. 불상은 불교전파 루트를 따라 퍼졌다.북으로는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해졌다.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후한(後漢)때인 1세기였으나,불상이 전해진 것은 한참 후인 4세기다.북방민족인 5호16국이 불교를 적극 수용하면서 독립된 불상양식 이 자리잡았다.그후 수.당을 거치면서 찬란한 불교문화가 꽃피었다.
불상은 특히 석굴사원 조성과 함께 발전했다.돈황(敦煌).운강(雲岡).용문(龍門)석굴 등이 이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5세기초부터 불상이 제작됐으나 본격적인 것은 6세기에 들어서다.고구려 불상은 북위(北魏)의 영향을 받아 강직하고 예리하며,백제 불상은 중국 남조의 영향으로 부드럽고 둥글다.신라는 삼국중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으나 신 라인의 뛰어난 조각수법과 주조(鑄造)기술이 발휘돼 훌륭한 불상들이 많이 제작됐다.특히 통일신라시대는 불교미술의 전성기로 불상 표현기술도 최고수준에 이르렀다.경주 토함산 석굴암은 그 대표적 존재로신라 불교미술의 정수(精髓)를 보여준 다.
21일 공개된 경주 나원리 5층석탑 사리함에서 나온 순금불상과 금동탑들은 신라 불교미술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특히 순금불상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띤 자비스런 모습에 절로머리가 숙여진다.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불국토( 佛國土)를 염원했던 신라인들의 마음이 되살아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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