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레터] 그 많은 책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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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왔는데도 봄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심정을 함축한 표현이라고 보통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지요. 하지만 그게 노대통령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출판계도 불황에서 벗어날 묘안을 짜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책의 생명력을 길러 주자는 것입니다. 지난주 ‘북리뷰 행복한 책읽기’에서 커버 스토리로 다룬 ‘문화의 오아시스, 헌책방’을 읽은 독자들이 서점과 헌책방 사이에 유통공간이 없다는 사실에 많은 궁금증을 보였습니다. 애석하게도 그 중간에는 별도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책들은 서점에 진열되었다가 독자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면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짧은 것은 생명이 2주일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출판계 관계자들은 새 책도 아니고 헌 책도 아닌 책, 즉 재고도서와 반품도서를 유통할 수 있는 공간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도서 반품률이 30% 정도입니다. 한국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반품되는 도서의 운명은 완전히 갈립니다. 한국의 경우 달리 출구를 찾지 못하고 연말에 파쇄되거나 소각됩니다. 그 양이 10만권 가량 되는 출판사가 많습니다. 그 수치는 어지간한 출판사의 1년 매출과 맞먹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반품 도서들이 다시 독자들을 찾습니다. 죽을 운명에 처한 책을 다시 살리는 유통구조 때문이지요.

예컨대 1991년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서 창업한 북오프(Book Off)는 중고책 유통으로 축적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의류·귀금속·생활잡화 등의 리사이클링 회사로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에는 470여억엔(약 4800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답니다. 영국에도 중고도서 전문 체인인 북케이스가 있고, 독일에도 재고도서를 판매하는 체인이 여럿 있습니다.

정명진 Book Review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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