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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악마가 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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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감독:기타무라 류헤이 출연: 브래들리 쿠퍼·레슬리 빕·비니 존스·브룩 실즈

장르:공포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원제 Midnight Meat Train)은 탄탄한 줄거리, 즉 아귀가 맞는 이야기와 적절한 시각효과를 겸비한 공포영화다. 공포물로 이름난 소설가 겸 영화감독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이 원작으로, 일본 감독 기타무라 류헤이가 메가폰을 잡았다. 모르고 보면 일본 감독인 줄 짐작하기 힘들 만큼 일본 공포영화의 영향을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지극히 미국적인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정통파 공포물의 맛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도시라는 배경은, 특히 뉴욕이라는 공간은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흔히 도시를 불야성, 즉 잠들지 않는 곳에 비유하는데 뉴욕의 지하철이 이런 경우다. 자정이 넘어서도 끊이지 않고 운행하기 때문에 인적 드문 심야에는 이 영화에 나오듯 휑한 차량 안에 나 홀로 손님이 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지하철 악몽에 시달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네 한밤의 지하철은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 서두른 승객들로 붐비게 마련이니까. 더구나 뉴욕의 지하철은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낡고 복잡한 선로는 도시형 괴담, 나아가 도시의 숨은 전설이 똬리를 틀기에 제격인 배경으로 활용된다.

주인공 레온(브래들리 쿠퍼)은 뉴욕의 냉정한 풍경을 즐겨 찍는 젊은 사진작가다. 여자친구(레슬리 빕)의 도움으로 유명한 갤러리 주인 수잔(브룩 실즈)을 소개받는데, 수잔은 레온의 사진에 퇴짜를 놓으며 더 강렬한 순간을 포착하라고 주문한다. 밤거리를 서성이던 레온은 지하철역에 들어섰다가 뜻하지 않은 작품을 건진다. 험상궂은 불량배에게 젊은 여성이 위협당하는 모습을 보고 셔터를 누른 것이 그야말로 인상적인 사진이 된다. 여자를 구하는 대신 셔터부터 먼저 누른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레온은 지하철역 구내의 폐쇄회로TV(CCTV) 카메라를 무기 삼아 불량배 퇴치에도 성공한다. 흐뭇한 마음으로 귀가한 다음날, 신문에 문제의 여성이 실종됐다는 놀라운 기사가 실린다. 전시회를 위해 추가로 사진을 찍어야 하는 레온은 한밤중의 출사를 거듭하고, 급기야 심야의 지하철에서 살인을 목격한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단서로 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직접 미행한다.

영화의 결말은 원작소설을 충실히 살렸고, 사진작가라는 설정은 영화가 덧붙인 살이다. 이모저모 효과적인 설정이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피사체에 한결 가까이 접근하려던 레온이 결국 스스로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점도 그렇고, 그가 본래 즐겨 찍는 사진이 사고 현장을 비롯한 도시의 살벌한 모습이라는 점도 그렇다.

유명 스타 없이도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구축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채식주의자인 레온이 섬뜩한 경험을 한 뒤 작심하고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것도 그렇지만 가장 돋보이는 것은 대사 한마디 없는 연쇄살인범 마호가니(비니 존스)다. 낮에는 앞치마를 두른 채 쇠고기 도축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지하철에서 인간 백정으로 돌변하는 인물이다. 특히 지하철에서 조신하게 다리를 모으고 무릎 위에 가방을 올려놓은 채, 솜씨를 발휘할 최적의 순간을 차분하게 기다리는 모습은 인간의 언어로 이해 불가능한 살인마의 살벌함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배우 비니 존스는 영국의 프로 축구선수 출신으로, 10년 전 가이 리치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통해 연기에 입문했다. 인간을 정육점 고기처럼 취급하는 살인마니 잔혹한 장면의 수위가 꽤 높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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