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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도 이젠 골라마시는 시대-맛.값.모양 차별화 大히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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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소주위의 소주」를 내걸고 지난 3월말 첫선을 보인 고급소주「김삿갓」이 애주가들의 입맛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전남목포 근거지의 시골소주인 보해양조가 전국시장으로 진출하기위한 야심작으로 내놓은 「김삿갓」은 이달들어 수도권에서만 2만9천여상자(70만여병)의 주문이 쇄도했으나 1만2천상자밖에 대지 못하는 공급부족현상이 발생했다.주정공급이 제 한받던 때 진로소주의 「품귀사태」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 소주의 질은 지난 60년대초 식량난으로 양곡관리법이 발효되면서 단일품질이 지배하는 구조가 굳어져 왔다.원료가 되는 주정(酒精)은 헐값의 타피오카.절간(잘라서 말린)고구마등이 전부였고 첨가물은 사카린등이어서 세계적으로 값싼 대 중주로 시중에 확산됐다.
애주가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이같은 소주맛에 무려 30여년동안을 반강제적으로 길들여져 왔다.더 고급이든,더 싸구려든 다른 소주가 국내에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당연히 회사 사장님이나 신입사원이 똑같은 소주를 마셔야만 했다.
90년대들어 곡물주정을 일부 섞은 소주가 잠시 등장하긴 했으나 마케팅 실패로 곧 퇴장했다.88올림픽 때 「관광용」이라는 이름으로 납작한 병모양의 소주가 선보였지만 병모양만 달랐을 뿐내용물은 대동소이,역시 대중화하는데 실패했다.그 러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는 시점에서 프리미엄 소주를 표방하고 나온 김삿갓이 1,2위의 진로.경월이 주시하는 가운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
김삿갓은 소주의 감미료로 이전까지 쓰던 스테비오사이드 대신 천연 벌꿀을 쓴 점 외에도 맛.값.모양새부터 파격적이다.기존의소주주정에 쌀.보리의 곡물주정을 섞어 순한 맛을 훨씬 높인데다차별화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삿갓 돌풍과 관련,양주시장에서 최근 숙성기간 12년 이상의 고급양주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현상과 결코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한다.사회적 지위에 따라,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차별화된 제품을 선택할 기회가 충분 히 주어져 있는 것이 선진국이고,이제는 우리도 그럴 때가 됐다는 얘기다.어쨌든 보해는 올해말까지 1백만상자(2천4백만병)판매라는 당초목표를 1백50만상자로 늘려잡고 생산라인 증설을 위해 라벨러등 추가설비를 발주하는등 법석이다.
『1조원대인 소주시장의 절반정도는 앞으로 프리미엄시장으로 바뀔 것』이라는 보해측의 낙관속에 역시 지방소주업체인 금복주도 최근 벌꿀소주 「독도」를 선보였으며,진로도 상반기중 김삿갓을 제압할만한 특급소주를 출시할 계획이다.지난 30여 년간 선택의여지없이 한해에 20억병씩 마셔온 애주가들의 입맛이 이들 고급화된 소주로 인해 과연 얼마만큼 변해갈지 관심거리다.
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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