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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권 8개국 ‘총성 없는 영토전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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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06면

2007년 8월 러시아 심해 탐사 잠수정 미르 1, 2호가 북극 심해로 방향을 잡았다. 바닥인 로모노소프 해령(海嶺)을 때린 잠수정들은 로봇 팔을 휘둘러 해저 4261m와 4302m에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를 꽂았다. ‘이 해령은 러시아 대륙붕이 연장된 곳이므로 결국 러시아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벤트였다. 공해 바닥에서 벌어진 이 행위를 다른 북극권 국가들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온난화로 드러난 새 항로 놓고 미국-캐나다 날 선 대립

북극권에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땅인 그린란드를 갖고 있는 덴마크는 1주일 뒤 노르웨이와 함께 40명으로 구성된 북극 해저 탐사대를 파견했다. 캐나다 총리는 직접 북극을 방문해 러시아 주장을 반박했다. 상대방의 주장을 가차없이 반박하는 움직임은 빙하 조각처럼 날카로운 북극 냉전의 단면이다. 미래의 땅으로 변하고 있는 북극해는 기회를 잡으려는 주변국의 각축전으로 냉전의 무대가 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 얼어붙은 금단의 대륙, 신화의 땅이었던 북극은 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북극권 개방을 골자로 한 무르만스크 선언을 발표하면서 문이 열렸다. 소련 붕괴 뒤 개방엔 속도가 붙었다. 미국·러시아·캐나다·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아이슬란드 8개국은 96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관련국 장관 모임인 북극이사회(Artic Council) 설립을 선언했다. 98년 1차 이사회 뒤 2년마다 회의가 열린다. 고위 관리회의는 연 2회 개최된다. 그런데 이사회는 테이블 위에선 고상하게 평화를 말하지만 테이블 밑 사정은 다르다.

미국과 캐나다는 북서항로의 새로 열린 구간을 놓고 대립한다. 북서항로는 북극해의 캐나다-미국 연안을 따라 개설돼 있던 항로다. 그런데 복잡한 섬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빙하 일부가 2007년 온난화로 녹으면서 새 항로가 열렸다. 캐나다는 이를 영해로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은 코웃음 쳤다.

이에 캐나다는 한발 나갔다. 새로 열린 항로 인근에 군항(軍港)을 만들고 순찰선 배치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은 군함과 잠수함을 파견하며 대응했다. 심각한 충돌로 치닫지는 않고 않지만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무색할 지경이다.

‘떠돌이 개 웨스트(Stray Dog West) 바위섬 분쟁’이라는 것도 있다. 덴마크와 캐나다의 다툼이다. 좁은 섬 사이에 끼여 있는 40m 높이의 바위섬을 서로 내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평화적인 나라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북극해 연안 8개국이지만 자기들끼리 얼굴을 붉히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의 북극 참여에 관대한 것도 아니다. 아주 인색하다.

북극이사회는 어떤 나라도 정식 멤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옵서버’로 자격을 제한하며 가입도 허락을 받게 한다. 외교부 서민정 해양법규 서기관은 “이 나라들은 자국의 권리를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만 다른 나라를 환영한다. 북극해에서 영해와 배타적 경계수역(EEZ)이 확정된 뒤 오라는 게 내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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