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절교육 4년째 달라진 개구장이들-서울 금화초등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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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4일 오전8시쯤 서울서대문구천연동 금화초등학교 정문앞.친구들과 재잘거리며 등교하던 3학년생 韓송이(10)양은 정문에 서계신 교장선생님을 보자 얼른 그자리에 멈춰섰다.
자연스럽게 韓양의 발 뒤꿈치는 붙여지고 앞발은 45도 각도로벌어진다.고개를 숙이던 韓양이 멈칫했다.점퍼가 열려진 것이다.
재빨리 옷매무새를 다듬은 韓양은 다시 허리를 반쯤 숙이며 공손하게 『안녕하세요』라고 소리내 인사했다.이를 본 김명수(金明秀.59.여)교장선생님도 똑같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받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인사를 마친 韓양이 돌아서며 국기게양대를 향해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지만 태극기가 안보인다.비가 내려 태극기를 걸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무안한듯 종종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갔다.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韓양은 운동장 세바퀴를 달린다.등교길에 학년 수만큼 운동장 달리기를 하는 것은 이 학교 학생들의 일과다. 인사법과 함께 식사예절과 경어사용법도 이 학교가 역점을 두는 예절교육이다.학생들이 식사를 시작하면 선생님들은 일일이 수저의 사용법을 가르친다.급식메뉴는 추어탕.우거지 선지국.
콩비지찌개등 「한국적인 것」이 대부분이다.또 매주 수요일 엔 올바른 경어사용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금화초등학교에서 이같은 예절교육이 시작된 것은 93년부터다.
92년9월 부임한 金교장이 아무에게나 욕설을 내뱉고 선생님을 뵈어도 고개만 까딱하는 학생들을 보다못해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아이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교육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지요.』 교사 2명씩 순번을 정해 아침마다 학생들의 등교를 맞고 金교장도 1주일에 서너번 정문 앞에 선다.학생들의 인사를 공손히 받아 학생들에게 모범된 자세를 보여주자는 취지였으나 처음엔 교사들 조차 반발.불평하기 일쑤였다.학생들의 행동거 지가상당히 비뚤어졌다는 생각에 환경부터 바꾸자는 취지에서 꽃밭 가꾸기 등에 金교장이 사재(私財)를 털기도 했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그러나 예절교육이 4년째 접어들면서 요즈음에는 주민들이 이 학교를 「양반학교」라고 부를 정도다.교내 곳곳에 그려졌던 낙서도 볼 수 없게 됐고 욕설은 물론 친구들과의 싸움질도 거의 사라지는등 학생들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3월 전학왔다는 吳윤진(12.6학년)양은 『처음엔 어색했지만벌써 버릇이 돼 어른만 만나면 허리가 90도로 숙여져 칭찬을 많이 받는다』고 좋아했다.학교 옆에서 8년째 문방구를 하는 박장석(朴長石.48)씨는 『어린이들의 표정이 밝고 자신에 차있어훨씬 씩씩해 보인다』며 『행동거지도 한결 으젓해졌다』고 흐뭇한표정이다.
학부모 최순희(崔順姬.36)씨는 『등교길의 어린이가 선생님과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콧등이 시큰해진다』면서 『가정이 할 일을 학교가 대신해주는 것같아 미안스럽다』고 했다.
김준현.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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