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십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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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권대웅(1962~) '십우도' 전문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자동차를 끌고 가네
길은 멀고 날은 저무는데
돌아보니 첩첩 빌딩이네
빨리 가려다가 더 늦게 가는 자들이여
오토바이를 타고 간 사람이나 비행기를 타고 간 사람이나
모두 오리무중이네



당신도 흰 소를 찾아 나선 적이 있는가. 흰 소가 어디 있을까, 흰 소가 어디 있을까, 중얼거리며 세상의 이곳 저곳을 뒤진 적이 있는가. 사막과 공장, 바다와 산맥을 가리지 않고 헤맨 적이 있는가. 꽁무니에 기나긴 빌딩의 숲을 달고 허우적대며 힘들게 늘어선 자동차의 행렬들…. 길은 멀고 날은 저무는데, 문득 옆 차선의 운전자가 하품을 한다. 하품을 하다 눈이 마주치자 한 손으로 피곤한 얼굴을 비빈다. 핍진한 그 모습이 형제처럼 사랑스러운데 벗이여, 그대 또한 흰 소를 찾으며 한 세상을 보냈겠지…. 욕망과 아집, 이기(利己)의 강물 속에서 첨벙첨벙, 종래는 흰 소의 이름조차 잊었겠지.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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