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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 엇갈린 육사 반세기-육사 50년 특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육군사관학교는 46년5월1일 88명의 생도로 창설된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모태로 출발했다.
육사는 지난 50년간 1만5천여명의 장교를 배출하고 6.25전쟁과 월남전에서 1천4백33명이 전사하는 등 안보역군이었다.
그러나 냉전조류의 안보우위 상황에 편승해 5.16과 12.12및 5.18을 거치면서 권력의 심장부에 자리잡았 다.졸업생 중대통령 3명을 비롯해 국무총리와 장.차관,국회의원 및 교수 등2백90여명의 사회지도층인사와 1천3백22명의 장성이 나온 것만 보더라도 한국 현대사에서 육사가 차지한 비중을 가히 짐작할수 있다.
육사 1기는 일본군과 만주군 등 해방 전 군사경력자로 구성된군영출신자 66명를 포함한 88명.서종철(徐鐘喆)전국방장관.임충식(任忠植)전합참의장.김점곤(金點坤)육사총동창회장 등이다.
육사 2기에는 육사출신을 권력층으로 끌어들인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과 10.26으로 세상을 바꾼 김재규(金載圭)전중앙정보부장이 있다.
5기는 8기와 함께 5.16을 주도했다가 반혁명세력으로 대부분 거세됐다.정승화(鄭昇和)전육군참모총장.김재춘(金在春)전중앙정보부장과 채명신(蔡命新)주월사령관 등이 5기생들이다.
8기는 5.16을 주도한 「풍운의 기」답게 육사 기수 중 2천42명(정규.특별반)이나 되는 가장 많은 졸업생을 냈다.장성도 역대 기들 중 최다인 1백41명을 배출했다.초대 중정부장과공화당총재 및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종필(金鍾泌) 자민련총재를 비롯해 김형욱(金炯旭)전중정부장,강창성(姜昌成).유학성(兪學聖)전의원 등이 그들이다.
10기(생도 1기)는 졸업을 20일 앞두고 6.25 전쟁이 터져 갓 입학한 생도 2기와 함께 생도신분으로 전쟁터에 나갔다.포천.태릉전투 등에서 65명이 전사하고 64명이 부상 및 낙오해 생도 2백63명 중 1백34명만 임관했다.「 불운의 기」인 생도 2기는 첫 4년제 생도로 입교 24일만에 군번.계급장도 없이 참전해 1백58명이 산화(散華)했다.
육사 첫 4년제 정규과정인 11기는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두명의 전대통령이 12.12 및 5.18로 구속돼 있는 현실이 말해 주듯 한국 현대사의 부침(浮沈) 바로 그것이다.全전대통령은 11기를 중심으로 결성된 사조직 하 나회를 확대해 이를 기반으로 정권을 장악했다.이런 11기는 정호용(鄭鎬溶).이기백(李基百).이상훈(李相薰) 등 국방장관만도 3명을 배출했다.「3朴-박희도(朴熙道).박준병(朴俊炳).박세직(朴世直)」으로 대표되는 12기에는 이밖에 안필 준(安弼濬)전보사.최세창(崔世昌)전국방.장기오(張基梧)전총무처장관 등이 있다.14기에는 이춘구(李春九)전민자당대표를 비롯해 이종구(李鍾九)전국방장관.안무혁(安武赫)전안기부장 등이 있으며 15기로는 권영해(權寧海)안기부장.이진삼(李鎭 三)전육참총장.권정달(權正達)전의원 등이 있다.
육사는 이같은 영광에도 불구하고 김영삼(金泳三)정부가 들어서면서 시작된 대대적 숙군(肅軍)작업으로 된서리를 맞았다.특히 한때 이 나라를 주름잡던 11기 이후 졸업생 중 상당수가 현재감옥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듯 정치적.사회적으로는 몰락하는 형국이지만 국가안보의 산실로서 육사의 위상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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